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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누구인가?서영천(徐永千) 거제경찰서 부청문감사관
태풍 ‘매미’가 휩쓸고 지나간 사흘째인 지난 9월15일.
정전으로 가까운 곳의 소식조차 들을 수 없어 답답하기도 하고, 외가(外家)가 있는 마을의 피해가 크다는 소식이 너무 궁금해 지구대와 치안센터 점검도 겸해서 출근하자마자 경찰서를 나섰다.

가는 곳마다 태풍의 상흔(傷痕)은 생각보다 깊고 험해 탄식과 안타까움이 내내 마음 한구석을 짓눌렀다.

억장이 무너지는 슬픔을 추스리고 부서진 잔해속에서 속절없이 무언가 주섬주섬 챙기고 있는 수재민 일가족의 모습에서, 자신보다 더 큰 피해를 당한 이웃 할머니 걱정을 하며 애써 쓴 웃음을 짓는 마을이장의 속깊은 한마디에서, 또 무엇하나 온전한 것이 없는 거대한 잔해더미속에서 파묻혀 비록 보잘것없어 보이지만 공무원과 자원봉사자들의 정성어린 복구의 손길에서,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다시 일어서려는 숭고한 인간의 의지를 가슴 시리도록 느낀 감동의 하루였다.

그런데, 폐허가 된 와현마을 복구현장에 들러 몇삽을 거든 후 구조라를 거쳐 망치, 양화마을을 지나면서 길 양옆으로 차가 줄지어 서 있는 것을 보고 이 경황중에 낚시 오지는 않았을 것이고, 복구지원 나온 사람들의 차량쯤으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해금강과 남부치안센터가 있는 저구마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영문을 알고는 이내 화가 치밀어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차들은 하나같이 우리지역의 차들이었으며 외지(外地)차는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여기에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낚싯대를 한가롭게 드리우고 있는 사람들 중에는 놀랍게도 우리 지역의 특정회사 복장을 한 사람들도 많았다.

바다에 있던 양식장 그물이 터지면서 키우던 고기가 모두 휩쓸려 양식장 주변을 떠돌고 있어 낚시만 던지면 많이 잡을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온 주변사람들이었다.

해안가에서 밀려온 쓰레기와 그것을 태우는 연기로 온통 뒤덮여 있는 저구마을의 치안센터에 도착해보니 앞마당에 20∼30대 남자 5∼6명과 일행으로 보이는 20대 후반 여자 2명, 그리고 또다른 일행으로 보이는 2∼3명이 경찰관 한명을 가운데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다.

사연은 이러했다.
인근 동네에 혼자 사는 할머니가 지난 봄에 바닷가 인근 밭에 시금치 등 채소를 애써 파종해 놓았는데 밭 아래 있던 축양장이 태풍이 유실되면서 파손되자 고기가 많이 잡힐 것이라는 소문이 났는지 차를 타고 온 그들이 할머니의 채소밭으로 차를 몰고 들어가 거의 주차장으로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신고를 받은 경찰관들이 그들을 붙잡아 왔는데 인근에 거주하던 할머니의 아들이 소식을 듣고 달려와 파렴치한(?) 그들과 보상관계로 ‘갑론을박’하는 중이란다.

참으로 기가 막혔다. 그 와중에도 태풍에 정면으로 노출됐던 치안센터 건물은 만신창이가 돼 직원 한명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쓰레기와 비바람에 날려온 온갖 잡동사니를 열심히 치우고 있었고, 거대한 해송이 건물 지붕을 덮치는 바람에 중장비가 아니면 손쓸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던 뒤편 축양장에는 주인으로 보이는 50대 남자가 망연자실한 채 마당에 퍼져 앉아 애꿎은 담배 연기만 길게 내뿜고 있었다.

쓰라린 아픔을 호소할 기력조차 잃어버린 피해 어민들의 가슴에 못을 박으면서 한가롭게 낚시를 즐기던 그들은 과연 누구인가?

회사에서, 지역 메스컴에서, 그런 행동을 자제하라고 몇 번을 홍보하고 방송을 했다는데 누구의 말처럼 그들의 행동은 단지 ‘자본주의의 일면’에 불과할 뿐인가.

태풍이 지나간지 한달이 다 돼 간다.
그동안 자원봉사자, 군인, 공무원, 경찰 등 고마운 사람들의 아낌없는 노력과 정성어린 지원으로 피해 복구도 많이 진척됐고, 좀 더디긴 하지만 언젠가는 원래 수준의 모습으로 회복될 것이다.

어쩌면 내년 여름에는 다시 고운 모래톱을 드러낸 해수욕장을 거닐면서 조개를 줍고, 파도가 일으키는 물보라를 바라보면서 그 독하디 독한 ‘매미’의 기억조차 잊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날 유실된 양식장 주변에서 어슬렁거리는 낚시꾼들을 가리키며 “저것들은 사람도 아이다”면서 거침없이 토해내던 한 젊은 어민의 원망과 절규는 어떻게도 회복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 혼자만의 기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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