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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칼럼-책 읽는 도시윤영 거제대학 교수(전 거제시 부시장)
우리는 역사상 가장 위대했다는 정복군주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를 잘 안다.

그는 고구려 광개토대왕과 같이 스무살 때 마케도니아의 왕이 되어, 32세에서 죽을 때까지 (BC 323년) 10년간 그리스, 이집트, 페니키아, 팔레스타인, 바빌로니아, 앗시리아, 소아시아, 페르시아, 인도 등 세계의 절반을 정복한 군주였다.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 필리포스왕이 그리스의 도시를 점령할 때마다 울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내가 왕이 되어 정복할 도시를 하나도 남겨놓지 않는구나.’ 그러나 알렉산더 이야기를 읽으면서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그는 단순히 땅을 정복한 군주가 아니라 항상 책을 가까이 한 대사상가였다는 점이다.

그는 항상 베개 밑에 책을 놓고 잠을 잤다고 한다. 당대 최고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스승으로 모시면서, 자신이 알렉산더만 아니라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고 했던 훌륭한 철학자였다. 그가 페르시아 원정의 제1단계로 이집트를 정복해 알렉산드리아라는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하고 나서, 가장 먼저 도서관을 건설하라고 명령했다고 한다.

이런 점이 그리스의 문화와 동방의 지혜를 합쳐 최고의 왕국을 건설하려했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요절하였지만, 그를 역사상 위대한 정복 군주로 남게 하지 않았나 싶다.

영웅호색(英雄好色)이 아니라 영웅호서(英雄好書)가 아닐런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에 이름을 남긴 훌륭한 인물치고 분서갱유의 진시왕을 제외하고 책을 가까이 하지 않은 사람이 없지 않을까. 이토우 히로부미의 심장에 총알을 박는 것이야 말로 우리의 독립은 물론이고 아시아의 평화회복의 요체라고 생각하셨던 우리의 위대한 안중근 선생께서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솟는다’(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 고 하지 않았던가.

로마 천년의 역사에서 가장 ‘창조적 천재’로서 로마의 건국자 로몰로스와 함께 신(神)으로 기록되고 있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책사랑은 유별했던 것 같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10권 중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는 한 인물에 대해 두권의 책을 할애했을 만큼 그가 로마사에서 차지했던 비중은 막대했다. 로마 최고의 부자 크라수스가 빚보증을 서고서야, 비로소 그가 빚쟁이로부터 풀려 에스파니아 제독으로 부임한 일화는 유명한 이야기다.

왜 그렇게 빚이 많았던가! 그 중요한 이유 하나가 빚을 내서 책을 너무 많이 샀기 때문이란다.(그 당시 책은 파피루스라는 가죽에 필사했기 때문에 매우 고가였다고함) 그래서 카이사르의 사후 남은 것은 산더미처럼 쌓인 책뿐이었다고 하지 않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지금부터 2000년도 더 전에 BC시절에 이미 속국인과 노예도 황제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했을 만큼 그야말로 광대무변의 사상가요 정치가였다.

책은 지혜의 보고(寶庫)다. 수많은 인물과 수많은 사건과 수많은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책은 우리들에게 엄청난 식견(識見)과 지혜를 가져다주고, 안목(眼目)을 높인다. 많은 독서로부터 얻은 지혜와 식견과 안목으로 무장한 사람이 역사를 창조하고 인류를 번영케 한 것은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클린턴 대통령과 나폴레옹 황제도 엄청난 독서광(讀書狂)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GDP차이는 대략 10배다. 이 10배의 차이가 바로 독서량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끔해 본다. 정확치 않지만 얼마전 본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의 한달 평균 독서량은 채 한권이 안 되지만, 일본의 경우는 약 2.7권이었다. 지난해이던가 언제 보도에 의하면 우리나라 대학생 1일 평균 독서시간은 30분이 채 안된다고 했다. 독서가 바로 경쟁력(競爭力)이고, 독서가 국력(國力)이라는 생각을 해 보면, 우리나라의 장래가 걱정이다.

우리 거제시가 도내에서 아니 전국에서 1인당 GRDP가 1위이거나, 이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에 덧붙여 시민 1인당 평균 독서량이 도내 1위, 전국 1위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부(富)와 문화와 예술과 지혜가 더불어 함께 어우러진 품위있는 도시, 이 얼마나 아름다운 도시겠는가.

필자가 지난 거제시장 보궐선거에서 제시한 ‘공무원 1주일에 책 한권 읽기’와 ‘읍면동사무소를 이용한 도서관 확충'이라는 공약이 별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공약이라 기억이 생생하다.

이렇게 맑고 선선한 가을에 PC에서 ’한게임‘을 하는 것도 좋지만, 한 권으로 된 읽기 쉬운 조선왕조실록을 펴놓고 우리 조상들의 삶과 문화와 정치와 역사를 살펴보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청소년들을 상상해보라.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삼국지를 펴놓고 8백여명의 실존인물이 펼치는 숨가쁜 싸움과 지략과 책략과 역사생성의 현장을 읽는 청소년들은 그 자체가 아름다움과 위대함의 절정체가 아니겠는가.
독서가 주는 가장 큰 이점은 ‘유연(柔軟)한 생각’을 형성케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유연한 생각이 ‘개혁적인 생각’이나, ‘새로운 생각’보다 훨씬 우위에 있지 않을까. 풍부한 독서를 통해 자기가 직접 경험해 보지 못한 인물, 사건, 상황, 논리, 생각을 경험해 본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생각이 유연할 것이라는 짐작은 그리 어렵지 않다.

이 유연함이 지혜와 식견과 안목을 높이고, 이런 사람들이 모인 조직이나 지자체, 국가가 그렇지 못한 조직이나 지자체 국가보다 훨씬 위대해 지리라고 짐작하는데 어려움이 있겠는가.

특히 지도자의 사고가 유연하고 식견과 안목이 높으냐 하는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바로 역사와 민족의 운명을 가름하기 때문이다.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우리나라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가정을 가끔 해본다.

새로운 중원의 패자로 떠오른 당나라와 걸출한 황제 이세민의 등장속에서 위협을 느낀 김춘추는 연개소문을 찾아가 연합을 제의한다. 그러나 끝을 모를 정도로 용맹스럽던 연개소문도, 김춘추의 이런 국제적 상황 인식을 도저히 인식하지 못하고, 김춘추를 옥에 가두어 버린다.

이에 김춘추는 옥을 탈출해 그 후 당태종을 찾아가 연합을 도모해 결국 고구려는 망하고, 고구려가 항상 도움을 주었던 소국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다. 만약 김춘추가 고구려의 대막리지였다면, 고구려가 통일하고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이 개척했던 요동과 만주땅은 우리영토가 아니었을까.

광해군과 인조! 역사는 전자를 형 임해군과 아우 영창대군을 죽인 패륜과 폭정을 일삼은 군주로 그리고 있고, 후자는 반정으로 광해군을 몰아내고 조선의 제16대 왕이 된 사람이다. 또 한번 역사의 가설을 시도해 보자.

광해군이 계속 조선의 왕이었다면, 조선의 왕이 청태종앞에서 꿇어앉아, 세 번 머리를 조아리고 아홉 번 절하는 수모를 겪고, 조선의 50만 아녀자들이 청으로 끌려가 수십만의 환향녀(還鄕女·고향으로 돌아오는 여자, 뒤의 화냥년의 유래)를 만들었겠는가. 대답은 단연코 ‘NO’일 것이다.

광해군을 폭군으로 그린 것은 반정에 성공한 대명 사대주의자들이 그들의 반란을 합리화하기 위해서였던 것이 아닐까. 광해군의 왕자 시절부터 외교문제는 선조가 의논했을 정도로 탁월한 외교적 감각과 식견을 가진 보기 드문 군주였다.

그 당시 온 조선이 대명사대에 빠져 있을 때에도,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로 중원에 떠오르는 누루하치를 보고 조선의 강토와 백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후금(뒤의 淸)과 사이를 좋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어렵게 왕이 되자마자 명청 등거리 외교를 펼치고, 강홍립에게 군사 일만을 주어 명을 도우는 척 하다가, 청에 항복하라고 밀명한다.

이에 청은 광해군을 높이 평가하고, 강홍립은 청에서 장군으로 십여년간 살면서 내내 청의 동태를 살펴 조선에 은밀히 보고하여 조선이 항상 위험에 대처할 수 있도록 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명사대만 부르짖던 인조가 왕이 된 지 채 삼년이 못 돼 정묘호란이 터지고, 조선의 강토는 피폐해지고 백성들은 굶주림으로 살았던 것이다.

이렇게 지도자들의 유연한 생각과 식견과 안목의 차이는 민족의 역사와 운명을 바꿀 만큼 중요한 것이다.

자 빛나는 눈동자와 넘치는 열정을 가슴에 품은 거제시의 자랑스러운 청소년들이여 책을 읽자! 여러분들은 거제를 짊어지고 갈 동량들이다. 그대들이 책을 읽지 않으면 거제의 미래는 없다. 거제시의 청소년들에게 이 시를 주면서 글을 맺고 싶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루어 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만은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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