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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철부어
이성보
거제자연예술랜드원장


지난 겨울은 몹시도 추웠다. 계미년(癸未年) 벽두에 몰아친 한파가 예사롭지 않기도 했지만 주변을 둘러보아도 얼어붙은 마음을 녹일 곳이 아무 데도 없었기에 더 더욱 추위에 떨었다.

그래서인지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련만 왠지 '봄이 오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이 일기도 했다.

계절의 순환은 어김없어 봄이 찿아왔다. 하지만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다.

학철부어라는 말이 있다. 앞뒷길이 꽉 막히어 곤궁한 처지에 놓인 것을 학철부어라 한다. 이것은 수레바퀴(車轍)가 지나간 자리에 비가 와서 물이 고였는데 부어가 비가 개이고 물이 빠지니 오목한 수레바퀴 자국에 우선 들어가서 구급(救急)은 했지만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이 많을 리가 없어 시시각각으로 줄어드니 물고기의 생명도 가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원래 이 이야기는 장자(壯子)의 외물편(外物篇)에 나와 있다.
사람이 위를 쳐다보고 영요(榮耀), 영화(榮華)를 바라본다면 한이 없는 일이지만, 이것은 그런 따위의 사치스러운 이야기는 아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판국에 다소간의 구원을 갈망하는 자의 심경을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에 빠진 붕어의 위급에 의탁하여 말하고 있다.

장자가 어느 때인가 무일푼이 되어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는 나날이 계속되어 견디지 못할 지경에 이르렸다.

감하후(監河候)란 지방관의 직책에 있는 위세가 당당한 친구한테 다만 끼니라도 이을까 하고 돈을 꾸러 나섰다.

친구는 상대자를 내심 귀찮다고는 생각하지만 마구 거절할 수도 없어서 핑계를 꾸며 쫓느라고 애를 썼다.

"빌려주지, 그런데 나는 장차 이 고을의 도조(賭租)를 걷으려 한다. 그때 가서 자네에게 삼백금 정도는 융통해줄 수 있네. 그때까지 기다려 주게나"

장자로 말하면 삼백금이나 되는 대금이 필요치 않았다. 목전의 허기를 매울만한 푼전을 꾸려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왔는데 간단하게 거절당하자, 화가 난 장자는 낯빛이 변했다.

"아냐 고맙네,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나" 하면서 입버릇인 비아냥조로 덧붙였다.

"내가 여기 오는 도중에, 나를 불러 멈추게 한 놈이 있었단 말야, 누군가 하고 둘러 보니까 길 한복판 수레바퀴 자국에 고인 물에 붕어가 한 마리 있지 않던가 「도대체 어떻게 된 셈이냐」하고 물으니까, 그놈이 「저는 원래 동해파도의 신하인데 어쩌다 이런 곳에 빠져서 몸을 움직일 수도 없고 고통스러워 죽겠습니다.

몇 잔의 물을 가지고 오셔서 저를 구해 주십시요」라고 말하지 않겠나, 나는 귀찮기도 해서 이렇게 대답하였네 「아아, 좋아, 내가 이삼일만 있으면 남방의 오(吳)와 월(越)에 유세를 가게 되니까 그 길에 서강(西江)의 물을 잔뜩 갖다 줄테니, 그때까지 기다려라」라고 말이네. 그랬더니 붕어란 놈, 벌컥 화를 내면서
「나는 지금 꼭 필요한 물 몇 잔만 있으면 살겠는데 당신의 말대로 하면 어느 때에 물이 올지 모르니 차라리 건어물전에서나 나의 사해(死骸)를 찿도록 하십시요」라고 하지 않던가, 아이고 방해 막심했네. 실례하이."

크고 작음과 많고 적음의 상대적인 차이가 무의미하다는 것과 그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많은 것이 적은 것에 미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장자는 비유로 말한 것이리라. 학철부어를 철부지금(轍 之急)이라고도 한다.

"갈시일적은 여감로요 취후첨배는 불여무(渴時一滴 如甘露 醉後添盃 不如無)라 했다. 갈증이 극에 달했을 때 이슬 한 방울이 감로수와 같고 술에 취한 이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소용없는 일이다. 주사만 늘지 않겠는가,

주변을 살펴보면 나처럼 학철부어 지경에 처한 사람도 많을 것이다.

은덕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베풀어야 한다. 내가 저지른 작은 악이 상대에겐 큰 상처가 될 수 있고 내가 베푼 작은 덕이 상대에겐 하늘처럼 고마운 경우가 되기도 한다.

특히 자기가 상대보다 낫거나 윗자리라고 여길 때일 수록 말이다. 그러길래 은의(恩義)는 넓게 펴라고 일렀다. 은의를 입은 사람을 살아 어느 곳에서 만나지 않겠으며, 크던 작던 원한을 사게 하였다면 그 사람을 언젠가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기 마련이다. 그땐 피하기 어렵다고 하지 않던가.

일이 잘되었을 때 도와 준 자가 자기의 공이라고 떠벌릴 때처럼 천박해 보일 때가 없다. 그래서 은혜를 베푼자는 빨리 잊어야 한다. 그러나 반대로 은혜를 입은 자는 이를 잊어서는 안된다.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한은 돌에 새긴다〉라는 말이 있는 걸 보면 받은 은혜를 잊는자가 더 많은 세상인지도 모를 일이다.

끄는 이가 있어 모처럼 노래방에 들렀더니 동행한 사람이 가수 오승근씨의 '있을 때 잘해'란 노래를 불렀다. 취기 어린 눈길로 노래방 기기 화면을 보면서 가만히 따라불러 보았다.
"있을 때 잘해 후회하지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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