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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대신 창단한 시골야구팀 전국을 흔들다

외포중, 전국중학야구선수권서 3위 쾌거
전교생 38명의 시골학교가 만든 감동극
102개팀 출전 내리 3연승 왕중왕전 올라
7회 말 안타에도 타자주자 아웃되며 분루

2:1로 뒤지고 있던 팀의 마지막 기회였던 7회 초. 학수고대했던 안타가 터졌다. 중견수를 훌쩍 넘어간 타구는 펜스를 향해 굴러갔다. 안타를 치고 죽을힘을 다해 뛰던 팀의 마지막 타자, 그리고 “조금만 더 달려”라며 목이 터져라 외치던 감독.

온몸을 내던져 슬라이딩 했지만 끝내 3루를 눈앞에 두고 태그 아웃되며 경기가 종료됐다. 혼신의 힘을 다했던 두 사람은 베이스를 사이에 두고 고개를 떨군 채 그렇게 한참을 일어서지 못했다. 역전승을 기원하며 환호를 내질렀던 관중석도 일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아쉬움이 섞인 한숨과 탄식이 나지막이 들려왔다. 그라운드를 바라보던 선수들도, 관중들도 순간적인 진공상태에 빠진 듯 했다.

바로 그때였다. “우리 선수들 잘했다. 고생했다. 장하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관중석에서 격려의 말들이 쏟아졌다. 눈물과 진심이 담긴 말들 위로 뜨거운 박수갈채가 더해졌다. 지난달 28일, 그 누구보다 뜨거웠고 간절했던 외포중학교 야구부의 전국대회 도전기는 그렇게 막을 내렸다. 전국대회 3위라는 걸출한 성적과 함께.

올해로 64회째를 맞이한 전국중학야구선수권대회는 중학야구대회 중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대회다. 전국의 모든 중학교 야구팀이 참가해 실력을 겨루는 전국 최대 규모의 대회에서 전교생이 38명에 불과한 시골학교 야구부가 한 편의 영화 같은 감동 스토리를 써 내려갔다. 외포중학교(교장 허인수) 야구부(감독 김용권)는 지난 6월 포항에서 열린 전국중학야구선수권대회에 출전해 내로라하는 중학교 야구부를 잇따라 격파하며 3위를 차지했다. 모두가 안 된다고, 불가능이라고 말할 때 보란 듯이 기적을 연출한 셈이다. 이번 대회에는 전국 102개의 모든 중학교 야구팀이 참가해 그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겨뤘다. A·B·C 3개조로 나뉘어 각 조에서 4강팀을 선발했고, 이들 12개팀이 대진추첨을 거쳐 우승을 다투는 왕중왕전으로 진행됐다.

거제리틀야구단 출신 선수를 중심으로 구성된 외포중 야구부는 창단 이후 전국대회에서 2승 이상을 거둬본 적이 없었다. 앞선 모든 대회에서 1승에 만족해야만 했다. 선수들은 이번만큼은 1승 그 이상의 좋은 결실을 맺기 위해 단체로 자진삭발까지 하며 결의를 다졌다. 

선수들 마음속에 내제된 승리에 대한 갈증이 폭발해서였을까. B조에 속한 외포중 야구부는 천안북중을 8:3으로, 설악중을 14:7로, 춘천중을 3:1로 차례로 격파하고 당당히 B조 4강에 진출해 왕중왕전에 안착했다. 야구부 창단 이후 모든 대회에 동행하며 야구부 운영에 힘쓰고 있는 외포중 고이만 체육부장은 “객관적 전력이 열세라는 것을 알기에 나조차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며 “3연승을 거두고 왕중왕전에 진출했을 때는 ‘하면 된다’라는 평범하지만 위대한 말의 의미를 몸소 실감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번 대회를 치르면서 학생들의 한계를 속단한 스스로에게 많은 반성을 했다”며 “앞으로 선수들이 갖고 있는 무한한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도록 옆에서 돕겠다”고 덧붙였다.

왕중왕전에 진출했지만 대다수의 야구 관계자들에게 외포중 야구부는 변방의 이름 없는 팀으로 인식됐다. “대진운이 좋았다”, “왕중왕전에서는 더 이상 이기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주변의 무관심과 편협한 시선에 외포중 야구부는 평소보다 더욱 똘똘 뭉쳐 의기투합했다. 왕중왕전 진출에 만족하지 않았다. 승리가 거듭되며 쌓인 자신감이라는 무기를 앞세워 우승을 목표로 결의를 다졌다.

 

전국대회 3위 ‘기적’ 아니다, 땀과 열정이다

흙바닥 뒹굴며 다져나간 전국 최강의 자리
선수·코치진 숙소생활하며 미래 꿈 다져

김용권 감독

제64회째 전국중학야구선수권대회 왕중왕전 8강의 첫 상대는 야구명문으로 손꼽히는 서울 충암중학교였다. 경기는 모두의 예상대로 흘러갔다. 외포중 야구부는 5회까지 4실점하며 끌려갔다. 그러나 외포중 야구부는 대회를 통해 더 이상 쉽게 무너지지 않는 단단한 팀으로 거듭나고 있었다. 마지막 7회 말 공격. 아웃카운트 한 개만을 남겨둔 상황에서 주장 김효운 선수의 동점 적시타와 서준교 선수의 극적인 끝내기 역전 안타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 같은 역전승을 일궈냈다.

주장 김효운 선수는 “선수들 모두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반드시 역전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며 “선수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준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용권 감독은 “패색이 짙어지면서 거제로 돌아가는 버스의 기사까지 시동을 걸고 복귀를 준비하고 있었다”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워준 학생들이 자랑스럽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왕중왕전 준결승에서 광주 무등중학교를 만난 외포중 야구부는 실책으로 아쉽게 2점을 먼저 내주며 최종 스코어 2대1로 석패하고 말았다. 하지만 후회 없이 싸운 한판이었다. 마지막까지 혼신의 힘을 다해 경기에 임한 선수들의 투혼은 아름다웠다. 외포중 야구부의 꿈을 향한 질주는 막을 내렸지만 이들이 보여준 열정의 플레이는 전국의 야구인들에게 강렬한 인상으로 각인됐다.

폐교 위기 내몰리자 야구특성화 학교로
평화로운 외포항 인근에 위치한 외포중학교는 전교생 38명의 조용한 시골 학교다. 해를 거듭할수록 학생 수도 줄어 지난 2011년에는 전교생이 고작 20명뿐이었다. 도교육청 방침에 따라 폐교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학교 교직원과 거제시야구협회는 학교를 살릴 묘안으로 ‘야구부 특성화 학교’를 떠올렸다. 거제리틀야구단에서 야구선수로 뛰던 초등학생들이 졸업 후 대도시로 진학하는 불편을 없애고 학교도 살리자는 취지였다. 2011년 9월26일 외포중 야구부는 그렇게 창단됐다.

외포중 야구부는 현재 1학년 10명, 2학년 8명, 3학년 7명 등 총 25명으로 구성돼있다. 여기에 창단 후 지금까지 팀을 이끌고 있는 제일은행 실업팀 선수 출신의 김용권(50) 감독과 이강준(32) 야수코치, 올해 2월 합류한 임현우(31) 투수코치가 학생들을 지도하고 있다. 

야구부를 창단한 외포중에게는 모든 것이 도전이었다. 지금은 거제시야구협회와 야구동호회 등에서 풍족하지는 않아도 부족하지 않은 지원을 받으며 야구단이 운영되고 있지만, 한때 폐교 위기까지 몰렸던 외포중은 학교 사정상 야구부 시설이나 운영 등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그 흔한 배팅기계는 물론 실내 연습장도 없어 여름과 겨울을 막론하고 언제나 운동장에서 연습해야 했다. 지금의 하청면 야구장이 생기기 전까지는 부상 위험이 많은 맨땅에서 달리고 굴렀다. 머무를 숙소와 씻을 곳이 없어 마을회관을 빌리기도 했고, 하청면 근처의 민박집과 월세집 등을 전전하며 옮겨 다니기도 했다. 야구단 전용 차량은 엄두도 내지 못해 거제리틀야구단 봉고버스를 돌려쓰기도 했다.

선수들의 학부모들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야구부 운영비를 조금이라도 더 아끼려고 자재들을 구입해 용접하고 페인트칠을 해서 투수망, 타격보호망 등의 훈련에 필요한 도구들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김 감독은 심지어 연습용 공이 부족해서 직접 거제 사회인 야구리그에서 사용하고 남은 공을 매주 수거해서 야구부 훈련에 사용했다.

또한 식대가 부족해 야구부 전원이 숙소생활을 하던 시절에는 김 감독이 직접 새벽마다 선수단 전원의 아침을 만들어 챙겨주기까지 했다. 김 감독은 “아침마다 스무 명의 식욕 넘치는 아이들의 밥을 챙겨주느라 주부습진까지 걸리며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며 “건강한 몸으로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아침만은 꼭 챙겨주자는 다짐이 그때의 힘든 상황을 이겨내는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야구부 창단 초기에 선수들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반찬을 먹이기 위해 주말이면 사회인 야구리그 심판과 경기 내용을 기록하는 아르바이트를 뛰기도 했다.   
타지에서 전학 온 10여명의 선수들과 함께 숙소생활을 하는 이 코치와 임 코치는 지금도 학생들의 아침을 도맡아 챙겨주고 있다. 이 코치는 “이제 웬만한 음식들은 뚝딱뚝딱 만들어 낸다”며 “한참 많이 먹을 나이인지라 고기가 들어간 반찬을 가장 좋아한다”고 미소를 지었다.

운동여건 힘들지만 학습도 병행…열정으로 견뎌
“집중해, 항상 다음 플레이를 계산하고 움직이란 말이야.”, “뛰어, 끝까지 뛰어, 일어서.”
지난 4일, 전국대회 3위 입상이라는 여운이 채 가라앉기도 전 다시 찾은 외포중 야구부의 훈련장에선 우렁찬 기합 소리가 이어졌다. 시험 기간이라 일찍 학교를 마친 이날도 선수들은 곧장 하청면에 위치한 훈련장으로 향했다. 선수들은 보통 학교 수업을 마치는 오후 4시부터 3~4시간 정도 훈련을 받는다. 김 감독은 “모자란 훈련시간을 보충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주어진 훈련시간 동안 강도 높은 훈련을 감행한다”며 “선수들이 하루 종일 수업을 듣고 이어서 훈련을 받느라 많이 지치겠지만, 잘 따라 와줘 너무 고맙다”고 말했다.

스트레칭과 준비운동으로 시작하는 훈련은 이후 타격·피칭·타구 캐치 훈련 및 웨이트 트레이닝과 런닝으로 이어졌다. 특히, 김성근 전 야구감독의 특훈 중 하나인 일명 ‘지옥 펑고’로 잘 알려진 타구 캐치 훈련이 시작되자 선수들은 거친 숨소리와 함께 연신 비명을 질러대며 그라운드 위로 쓰러졌다.

“공의 바운드를 미리 예측하고 움직여.”, “다리가 안 가잖아, 다리가.” 수비수에게 볼을 쳐주는 이 코치의 호통이 이어진다. 그럴수록 선수들은 더욱 우렁찬 기합으로 스스로와 친구들을 다독였다.  이 코치는 “전국중학야구선수권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을 때 이때까지 선수들과 함께 했던 힘든 훈련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며 “지도자로서 너무나 뿌듯한 순간이었다”고 당시의 감동을 전했다. 야구를 위해 부산에서 왕복 2시간이 넘는 거리를 매일 버스로 통학하는 양지웅(1년)·송경환(1년) 선수는 “저녁까지 힘든 훈련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면 아홉시가 훌쩍 넘을 때가 많다”며 “그래도 좋아하는 야구를 할 수 있어 견딜 수 있다”고 환한 웃음을 보였다. 대회가 끝나자마자 곧장 고강도 훈련에 돌입한 이유는 오는 9월 경주에서 열리는 U-15 전국유소년야구대회 대회에 참가하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 ‘어느 팀과 붙어도 이길 자신이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선수들은 이제 더 높은 곳으로 날아오르기 위해 끝없이 뛰고 또 뛰며 구슬땀을 쏟고 있다. 이번 대회에서 거둔 성적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증명하겠다는 각오가 훈련장을 가득 메웠다. 후덥지근하고 습한 바닷바람에 연신 땀을 흘려가며 배팅과 투구연습에 열중하던 선수들은 늦은 저녁이 돼서야 훈련을 마무리하고 짐을 챙겨 훈련장을 떠났다. 

지역 고교야구부 창단, 꿈 아닌 현실로 다가와야
훈련장 한 편에서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던 김 감독은 고등학교 진학 시기가 다가올 때마다 시름이 깊어진다. 아직 거제에는 야구부가 있는 고등학교가 없다. 이 때문에 3학년 선수들은 야구를 계속하기 위해 부산·마산 등 타 지역 고교 야구부로 전학을 가야한다. 다행히 올해 3학년 선수 7명은 경남지역 내 고등학교 야구부 진출에 대한 윤곽이 잡힌 상태다. 김 감독은 “진학 시기에는 고등학교 진학팀을 찾아 이 학교 저 학교 쫓아다니기 바쁘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듯 김 감독에게도 선수 한 명 한 명이 소중하다. 그는 “실력이 출중해 모두 다 희망하는 고등학교로 진학하면 좋겠지만 현실은 쉽지가 않다”며 “지역에 고등학교 야구부가 있다면 우수한 인재들의 외부 유출을 막고 선수들 또한 집에서 가족들과 지내며 좀 더 안정된 상태로 야구에 집중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스포츠에서 우승이나 이길 확률이 적은 팀이나 선수를 일컫는 ‘언더독’의 반란 스토리는 언제나 많은 관심을 받는다. 그러나 그만큼 쉽게 가라앉기도 한다. 외포중 야구부에 대한 관심 역시 이번 대회를 끝으로 ‘신데렐라 스토리’ 마냥 반짝하고 끝날 수도 있다.
거제시야구협회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외포중 선수들이 끝까지 야구선수의 꿈을 실현해 나갈 수 있도록 이제는 거제시와 야구협회 등 어른들이 나서 실내연습장과 고등학교 야구부를 선물할 때가 됐다”고.

 

 

강성용 기자  skok@geoj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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