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탐방
여름(夏), 섬을 만나다

이수도, 남자 인물 훤칠해 ‘인물섬’ 불려
수풀 속 노니는 사슴, 한적한 섬과 어울려
일손 부족해 외국 근로자 손 빌린지 오래
민박 대부분 1박3식 마케팅으로 손님 끌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18일 이수도항 선착장에서 마을주민 신경환(53)씨가 고랑치를 잡는 그물 보수 작업에 몰두한 채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장목면 시방마을에서 바라본 매미성은 무더위에도 아랑곳없는 청량함을 자랑했다. 저 멀리 우뚝 솟은 거가대교도 한눈에 들어왔다. 이수도와 시방마을을 오가는 도선은 시방항에서 손님을 태운다. 물(水)이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섬 이수도. 대금산에서 바라보면 섬의 형상이 대금산을 향해 날아오는 학(鶴)처럼 생겼다고 해 ‘학섬’이라고도 불린다. 또 남자들의 인물이 훤칠해 ‘인물섬’이라고도 불려왔다.

오래전부터 물이 좋아 건너편 시방마을 사람들이 이수도까지 와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은 진주 남강에서 끌어 온 물을 쓰고 있다. 이수도는 원래 본섬과 동섬이 자갈로 연결된 2개의 섬으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다가 거센 바람과 파도에 대비하기 위해 방파제를 축조하면서 하나의 섬이 됐다. 한때 대구 등 어자원이 풍부해 ‘부자 섬’으로 통했을 정도로 이수도는 어족자원이 풍부한 섬이다.

7개월째 시방항에서 이수도 주민과 관광객을 실어 나르고 있는 신동국(60·거제면) 선장은 경력 40여년의 베테랑이다. 신 선장은 “이수도는 겨울철에 먹을 것이 풍부하고 더 아름답다”면서도 “하지만 봄 행락철인 5월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섬을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수도 민박의 대부분이 1박3식이라는 마케팅 전략을 쓰고 있다”면서 “이 때문인지 5월 이수도를 찾는 관광객들 대부분이 점심시간 때 섬에 들어갔다가 다음날 아침을 먹고 이수도를 떠난다”고 설명했다. 지난 18일 이수도행 배에 오른 조인숙(여·59·부산 기장군)씨는 “최근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거제도 이수도 민박에서 1박3식을 주는 것을 알게 됐다”며 “해수욕도 즐길 수 있는 데다 먹을 것 걱정도 없어 12명의 일행들과 함께 오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 이수도에는 주민 43세대, 별장과 외부 11세대 등 모두 54세대가 살고 있다. 박영기(66) 이수도 어촌계장은 “이수도에서 태어나 다른 지역에서 살다가 다시 돌아온 지 14년 정도 됐다”면서 “들어온 뒤 14년 사이에 섬이 많이 변했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민박업을 하고 있지만 겨울에는 대구, 여름에는 문어를 수확하는 작업으로 먹고살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민 신경환(53)씨는 “고랑치(등가시치) 잡는 그물을 수선하고 있는데 그물보수작업이나 보망이라고도 표현 한다”며 “이렇게 보수를 해두지 않으면 그물이 찢어지기 쉬워 여름철에 꼭 해둬야 하는 작업”이라며 바삐 손을 움직였다. 이수도에서는 외국인 근로자들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고기잡이 일손이 부족해지면서 인도네시아 등 해외에서 일을 하기 위해 국내에 입국한 사람들이다. 우리나라에 온 이들은 3년 동안 계약직으로 일하게 된다.

이수도를 한 바퀴 둘러보기 위해서는 1시간30분 정도를 투자해야 한다. 이수도항에 우뚝 선 하얀등대는 들어오는 배를, 빨간등대는 출항하는 배들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운영된다. 선착장에서부터 파도전망대까지 1㎞ 남짓 되는 거리를 걷다보면 우거진 수풀로 가득 찬 계단식 논들을 만날 수 있다. 또 길가를 가득 메운 고사리도 발견할 수 있다. 이 고사리는 채취금지다. 섬 주민들이 소득 작물로 기르고 있어서다. 해안낚시터와 파도전망대를 갈라놓은 샛길, 해돋이 전망대와 선착장, 그리고 사슴농장을 가르는 길 등은 이수도의 아름다움을 사진 속에 담을 수 있는 최적의 장소들이다. 운이 좋으면 수풀 속을 자유로이 거니는 사슴들의 모습도 덤으로 볼 수 있다.

박 계장은 “몇 년 전부터 진주 남강물이 식수로 들어오고 있지만 옛날에는 가뭄이 들어도 이수도만은 물이 흘렀을 정도로 물이 많고 좋았다”면서 “해안낚시터 갯바위 위에서는 거제도와 저도, 중죽도, 대죽도는 물론 날이 좋으면 대마도까지 보인다”고 자랑했다.

 

한 여름의 섬, 그곳에서 찾아보는 묘한 매력

이수도 길은 오솔길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혼자 걸어가기 안성맞춤이라 이수도에서는 나란히 걷지 않고 앞사람을 따라 줄줄이 걸어가는 모습이 연출된다.
이수도는 구릉(일반적으로 해발 300m 이하의 비교적 완만한 경사면으로 되어 있는 저산성의 산지)이 많고 평지는 10% 정도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본섬 쪽으로 뻗은 반도의 남쪽과 북쪽에 완만한 만입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돼 있다. 섬의 유일한 교육기관이었던 이수도분교는 1940년 5월 간이학교로, 1944년 정식 개교해 지난 2004년 3월 제42회 졸업생을 마지막으로 문을 닫았다.

울창한 원시림과 가슴아픈 역사 속으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월의 오후. 초록빛 동백잎이 무성한 지심도를 찾았다. 유명세를 제법 탄 탓인지 평일인데도 지심도 행 유람선은 관광객과 섬 주민들로 가득 차 있었다.
장승포항에서 뱃길로 약 20분. 행정구역 상 일운면에 소속된 지심도는 2015년 말 기준 21가구 37명이 살고 있다. 너비 약 500m, 길이 1.5km 가량인 지심도는 섬 대부분이 동백나무로 뒤덮여 있다. 지심도의 역사는 17세기 후반 조선 현종 때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고요하고 아름답지만 가슴 아픈 역사를 고스란히 안고 있는 동백섬 지심도. 수 백 년을 성장해 온 동백나무들은 섬 하늘을 뒤덮어 내리쬐는 햇볕을 가려준다. 나무를 베 땔감으로 사용하던 가난한 옛 시절, 국방부 소유였던 지심도는 사람의 손길이 닿지 못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현재의 지심도를 울창한 원시림을 간직한 섬으로 만들었다.

이곳에서 자라는 식물은 동백나무를 비롯해 소나무, 후박나무, 거제 풍란 등 모두 37종에 달한다. 마을로 들어가는 입구부터 나무들의 터널을 시작으로 울창한 상록수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섬이 작고 경사가 급해 차량운행이 불가능하다. 유일한 운송 수단은 사륜 오토바이들. 민박에 묶게 되면 민박집에서 그 오토바이를 타고 선착장에 마중을 나온다. 섬주민 조동일(66)씨는 “매번 민박에 묵는 손님들의 짐을 가지러 항구로 나와야 한다”면서 “짐을 들고 민박까지 오기에는 경사가 급하고 길이 좁아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지심도에는 선착장을 비롯한 섬 곳곳에서 음악과 함께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지심도 오디오 가이드북이 설치돼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한려해상국립공원동부사무소 김현권 해설사는 “지심도는 예로부터 사람이 살았다”며 “역사적으로 일제강점기 시대의 아픔이 있는 곳이지만 생태적으로 건강함 섬”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제강점기를 거쳐 국방부 소유가 되면서 민간인들이 개발을 진행할 수 없어 식생이 건강하다”며 “후박나무의 경우 수령 300년 이상, 동백나무도 적게는 100년에서 많게는 300년 이상이 자생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심도에 자생하는 동백나무는 계량종이 아닌 우리나라 토종이다. 토종 동백은 꽃잎이 5개, 7개, 9개로 홀수를 이룬다. 또 꽃잎이 통으로 떨어지며 수분을 동박새가 해주는 특징이 있다. 김 해설사는 “동박새의 개체 수가 많지만 일찍 활동하는 습성 때문에 사람이 잘 발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심도는 섬모양이 마음 ‘심(心)’을 닮아 ‘지심(心)도’로 불리고 있지만, 숲이 우거져 있어 수풀 ‘삼(森)’ 자를 쓴 ‘지삼(森)도’로 불리기도 했다. 1896년 고종 때에는 지심도와 지삼도를 혼용해서 썼다고 한다.

선착장에 서 있는 한려해상국립공원 안내도를 지나면 수령 300년의 후박나무를 만날 수 있다. 이어 작은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면 일본군 서치라이트 보관소가 나온다. 1935년부터 1938년까지 4년간 지어진 탐조등 보관소는 원거리 물체들을 탐색하거나 비추는 용도 또는 표지등의 용도로 쓰였다. 보관소는 포대나 탄약고처럼 견고한 콘크리트로 만들어졌다. 두꺼운 철문은 일본 대마도에 있는 탐조등 보관소와 닮아 있다. 서치라이트 보관소를 지나 숲길을 걸어가다 보면 해안침식 절벽이 나온다. 파도와 바람, 조류 등 자연의 세월이 빚은 이 절벽은 해식애라고도 한다.

생태학습장이라고도 해도 무방할 정도로 지심도에는 동백나무, 곰솔, 후박나무, 생달나무 등이 빼곡히 자란다. 어른 두 사람이 겨우 안을 수 있는 큰 동백나무도 쉽게 볼 수 있다. 나무 아래 자라는 풀들도 육지의 것들과는 크기가 사뭇 다르다. 오랜 시간 부엽토가 쌓여 토질이 좋고, 제주 서귀포 다음으로 강수량이 많아 난대성 상록활엽수가 자라기 좋은 환경이기 때문이다.

지심도에서는 연리지(連理枝 : 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 나무처럼 자라는 현상)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가장 유명한 지심도 연리지는 참식나무와 포구나무가 뒤엉켜 자라는 연리지다. 이 연리지를 자세히 살펴보면 나무 여기저기에 상처가 나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상처들은 사람이나 동물이 낸 것이 아니다. 서로 다른 두 종류의 나무가 하나처럼 자라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준 것이다. 김 해설사는 “이 연리지는 ‘사랑은 고통’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록의 푸르름과 수줍게 꽃망울을 터트린 야생화, 깎아지른 해안절경과 고즈넉함이 어우러진 지심도의 여름. 지심도의 여름은 붉은 동백꽃이 만발한 지심도의 겨울만큼이나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이수도 본섬과 동섬이 방파제를 쌓아 연결돼 하나 된 모습.
성인 남성이 두 팔을 벌려서 안아보는 모습에 300년 된 소나무의 크기를 느낄 수 있다.
지난 18일 지심도를 찾은 관광객들이 지심도 맹종죽길을 걷고 있다.
한려해상국립공원 자연환경해설사의 지심도 설명을 듣고 있는 관광객들.
동백나무가 터널을 만들어 놓은 숲길을 거닐고 있는 두사람.
갑자기 나타난 하얀줄나비를 카메라에 담으려는 관광객의 모습.

윤수지 기자  skok@geojenews.com

<저작권자 © 거제중앙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윤수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실시간 인기기사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