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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 / 언어와 문화이금숙 칼럼위원

중국의 흑룡강성은 지도상으로 보면 맨 위 북쪽, 내몽골과 몽골, 러시아와 인접해 있는 북방의 끝자락이다. 동북3성의 하나인 흑룡강성의 성도 하얼빈 시는 우리에게 안중근 의사와 731부대, 겨울축제인 빙등제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그런데 2010년부터 거제의 청마기념사업회가 청마 유치환 시인이 잠시 거주했던 연수현의 가신촌이란 곳을 세 따님과 함께 찾아 청마의 북만행적과 사료를 모으는 한편 2015년부터는 하얼빈시와 인근 조선족 학생을 대상으로 청마를 기리는 기념 백일장대회를 매년 조선족 작가협회와 공동으로 개최,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다.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멀리 혹한의 땅 하얼빈으로 가족과 이주해 절명의 삶을 살았던 청마 유치환 시인은 해방이 돼 고국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5년여의 세월을 연수현 가신촌에 거주하며 시집 ‘생명의 서’에 실린 주옥같은 시들을 남겼다.

여름이 자리 잡은 하얼빈시는 한참 개발붐이 일어 옛것과 새것이 공존하는 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블라디보스톡이 극동의 작은 모스크바라면 하얼빈은 초원에 핀 또 다른 북방의 작은 모스크바라고 할 수 있다. 현재 흑룡강성에는 경상도 말을 하는 조선족(그들은 조선민족이라 했다) 20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연변지역이 함경도에서 넘어 온 사람이 많은 반면 흑룡강성은 우리나라 남쪽지역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이 주로 고려촌이란 곳에 모여서 터를 잡고 살았다고 했다.

이번에 세 번째 청마백일장을 치른 하얼빈시 동력소학교를 비롯한 인근에는 아성구·상지시·연수현·오상시 등 조선족학생들이 다니는 초중 13개 학교가 있다. 순수하게 우리글과 우리말을 직접 가르치고 있는 학교들이다. 이역 만 리 타국에서 우리의 언어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도 반갑지만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우리글과 우리말을 잊지 않고 배우고 있다는 사실에 먼저 기쁨을 금할 수가 없다. 이들 학교의 선생들도 모두가 조선족교포 3~4세 교사들이다. 그래서인지 그들이 가르치고 있는 학생들은 중국어가 아닌 한글로 모든 교과과목을 공부하고 있다.

이번 백일장에 참가한 학생들은 조선족 학교에서 예선을 치르고 결선에 진출한 학생들이어서 그런지 글씨체도 정자로 쓰고 문장력도 상상 이상이다. 인터넷과 신조어에 물든 한국의 학생들에 비하면 때 묻지 않은 고유 언어가 반짝반짝 빛이 난다. 학생들의 배움의 열기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우리글과 말을 잊지 않고 가르치려는 교사들의 땀과 열정이, 학부모들의 한글을 배우게 하려는 자녀 사랑이 고스란히 백일장 내용 속에 담겨 있다.

대회가 열린 동력소학교를 돌아보면 유치원부터 초등학교까지 학생들의 배움터가 얼마나 잘 꾸며져 있는지 직접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우리나라 여느 학교보다 더 질적으로 수준이 높다고 하면 믿을라나.

또한 ‘하얼빈 여름-중한문학의 밤’에 만난 초등교사들과 중등교사들의 면면을 보면서 나는 그들의 깊은 민족 사랑을, 우리 것을 잊지 않으려 애쓰는 그들의 생활문화를 직접 느끼며 실감했다. 중국 정부에서 자치주인 조선족들에게 우대 정책을 해준다고는 하나 인구 감소로 인해 조선족 학교가 매년 줄어들고 있는 시점에서 조선민족들이 스스로 자구책을 만들지 않으면 언제 중국 땅에서 우리글과 우리말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이번에 개최된 한글백일장 대회는 그래서 더 큰 의미를 갖는지 모르겠다.
하얼빈에서 발행되는 잡지 ‘송화강’과 흑룡강 신문사에 근무하는 조선족 젊은 작가들의 진솔한 애기도 모처럼 방문한 우리들을 감동시켰다.

내년 행사에는 정말 우리글과 말을 가르치는 하얼빈의 조선족 교사들에게 진심어린 선물이라도 해 드려야겠다. 또박 또박 원고지에 써 내려간 학생들의 작품을 접하면서 한국의 대시인 청마의 문학과 생명력 넘치는 시혼이 여기서도 오롯이 학생들에게 전달되고 있음에 감사했다. 그리고 함께 청마의 시를 낭송하며 어울렸던 하얼빈의 작가들의 가슴에도 청마가 있음에 또 감사했다.

문화란 누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들에 의해서 전해지고 피어나고 이어지는 것이다. 짧은 여름 하얼빈을 찾은 나에게 청마는 세월을 넘어 우리의 언어로, 글로 되살아나 뜨거운 노래로, 항가새 꽃으로 피어나고 있음을 먹먹한 가슴으로 마음으로 느끼고 왔다.
가는 길은 멀지만 또 바람이 불면 언제고 하얼빈의 조선족 교포들을, 학생들을 보기위해 떠날 것이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상쾌한 마음으로….

거제중앙신문  skok@geoj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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