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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둑 싹둑’ 가위질 소리에 웃음도 행복도 커져갑니다

이·미용 자원봉사단 아름회
20년 동안 온정 손길 나눠
육체·정신적 부담 크지만
결손가정아동·재가환자 등
말끔해진 모습 보며 보람

이·미용봉사단 ‘아름회’의 김선옥 회장이 지난 21일 사등면 ‘21C 한일병원’에서 환자들의 머리를 다듬고 있다.

 

“구레나룻 쪽은 조금 남겨두고, 머리는 너무 짧게 자르지 마세요!”, “저는 그냥 시원하게 바싹 깎아주세요. 대신 멋지게요!”, “제가 자를 차례에요!”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복도 끝자락에서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들뜬 목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소리를 따라 발걸음을 옮긴 그 끝에는 재활실이라는 팻말이 붙은 한 공간이 나타났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드르르, 드르르’ 거리며 요란하게 울려대는 이발기 소리와 ‘싹둑싹둑’ 가위질 소리가 그곳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지난달 21일, 사등면에 위치한 21C 한일병원. 이·미용 자원봉사단체 ‘아름회’ 회원들이 환자들을 대상으로 이·미용 봉사를 펼치고 있었다. 3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쉴 틈 없이 환자들의 머리를 다듬은 회원들의 몸은 지쳐 보였지만, 미소와 행복한 표정을 머금은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밝게 빛났다.

아름회 봉사단은 매달 한 차례씩 하청면 ‘선인노인요양원’, 장승포동 ‘애광원’, 사등면 ‘21C 한일병원’, 고현동 ‘거붕백병원’, 거제면 ‘사랑의 집’으로 직접 찾아가 봉사를 하고 있다. 이 밖에 지역 곳곳에서 거동이 불편하거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결손아동과 재가환자의 머리를 다듬어 주고 있다.

아름회는 1998년에 최초로 결성돼 올해로 이·미용봉사를 시작한 지 정확히 20년째가 됐다.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뀔 만큼 오랜 기간이 지났지만, 봉사에 대한 이들의 열정은 여전히 뜨거웠다. 특히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단 한 차례도 빠지지 않고 약속한 일정의 봉사를 지켜왔다고 말하는 김선옥 회장의 표정에서는 자부심까지 느껴졌다. 
아름회는 김 회장을 포함한 15명의 회원들로 구성돼 있다. 회원들은 저마다 하는 일도 다르고 참여하게 된 계기도 제각각이지만, 본인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오랜 시간을 한결같이 함께해 오고 있었다.

김 회장은 “여러 단체들로부터 따로 부탁을 받은 곳도 직접 찾아가느라 일주일 내내 머리를 자르고 다니던 때도 있었다”며 “녹초가 될 정도로 몸이 지칠 때도 있지만,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다”고 말했다.  
회원들 중 가장 먼저 이·미용봉사를 시작한 문창오 총무는 아름회가 결성되기 전인 25년 전부터 애광원에서 개인적으로 이·미용봉사를 해왔다고 한다. 문 총무는 “젊었을 적 3년간 상선의 갑판부 선원으로 지내며 배를 타고 바다를 돌아다니다 보니, 사람에 대한 그리움에 사무쳤다”며 “배에서 내린 뒤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내고 싶어 시작한 이 봉사가 이제는 생활 일부를 차지하게 됐다”고 지난 시절을 회상했다.

문 총무의 소개로 몇 년 뒤 함께 봉사를 시작하게 된 박옥한씨는 “지금은 회원들이 늘어나 시간이 많이 단축됐지만, 당시에는 문 총무와 둘이 아침 9시에 애광원에 들어가 날이 어두컴컴해지고 나서야 밖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현재도 각각 하청과 사등면에서 이용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들과 달리 아름회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가위로 제대로 된 머리 손질도 해보지 않았던 회원들도 많다. 봉사하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미용사인 친구에게 머리 손질하는 법을 직접 배워 온 변상순씨도 있었다. 변 씨는 “50살이 되면 봉사를 하며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지내다 애광원으로부터 아름회라는 이·미용봉사단체에 대해 전해 들었다”며 “덜컥 미용장비만 100만원치를 샀는데 머리 자르는 기술이 없어 미용실을 하는 친구를 찾아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봉사활동을 오랫동안 진행해오면서 웃지 못 할 에피소드도 많이 겪었다. 유정원씨는 “한 번은 자신은 죽어도 이발을 안 하겠다는 어린 친구가 있었는데, 알고 보니 머리를 깎으면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 알고 그렇게 고집을 부린 것이다”며 “우리는 봉사를 하러 온 것이라 돈을 안 내도 된다고 설명하자, 그제야 커트보를 둘렀던 적이 있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또 다른 한 친구는 이발 후 목욕을 하고 나서 벌거벗은 몸으로 이발하는 곳으로 뛰쳐나와 당혹스러웠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힘든 일도 많았다. 몸을 스스로 가누기 힘든 지적 장애우들을 위한 재활시설인 애광원에서 봉사하는 날이면 다른 날보다 몇 배는 더 힘이 든다. 요즘 같은 여름날에는 비 오듯 흐르는 땀에 옷이 흥건히 젖기도 한다.
옥치연씨는 “바리캉 소리 때문인지 이발을 하지 않으려고 온 힘을 다해 발버둥을 친 친구가 있었는데, 어찌나 힘이 세던지 어른 네 명이 붙어서 달랜 끝에 겨우 이발을 했다”며 “이발을 할 때 움직이면 상처가 날까봐 긴장을 하고 머리를 깎았던 탓인지 그 날은 집에 돌아가서 거의 탈진했다”고 말했다. 육체적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느끼는 스트레스도 상당하다고 회원들은 말했다. 아름회가 봉사활동을 펼치는 애광원이나 요양원, 병원 등에는 중증 장애우나 병세가 위중한 환자, 나이가 많이 든 어르신들이 많기 때문이다.

유정원 씨는 “한 번은 이발하던 도중 발로 차고 침을 뱉거나 꼬집는 친구들도 있었다”며 “정신적으로 온전하지 못해 일으킨 행동인 걸 알면서도 가끔은 ‘이 봉사를 계속해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또 김 회장은 “만났던 분들이 보이지 않아 직원에게 물었더니, 갑자기 증상이 악화돼 세상을 떠났다는 대답을 듣기도 했다”며 “몸이 좀 불편해 보였지만, 밝게 웃으며 반겨주던 분들이 갑자기 그렇게 됐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는 많이 심란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중증 장애인 돌보는 봉사가 이젠 삶의 일부

쉽지 않은 일에 포기자도 속출
말끔해진 모습 보며 보람 느껴
“내 몸이 멀쩡할 때까지 도울 것”

몸이 불편한 중증 장애인이나 환자들을 일으켜 머리를 깎이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봉사하러 왔다가 한두 번 만에 포기하고 떠난 사람들도 한 둘이 아니었다고 한다. 거제지역 안에서 몇 차례 다른 이·미용봉사단체들이 생겨났다가 다시 사라지기도 했다.

김 회장은 “오랜 세월을 해오다 보니 지금은 많이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정말 쉽지 않았다”며 “심장이 튀어나오거나 척추가 S자로 꺾인 환자, 몸이 딱딱하게 굳은 장애인들을 처음 만났을 때는 심적으로 많이 힘들어 가위가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발을 마치고 말끔해진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무엇보다 큰 기쁨이다. 이제 아름회 회원에게는 아름회 활동이 단순한 봉사가 아닌 생활의 일부가 돼 있었다. 이들은 입을 모아 시간과 건강이 주어질 때까지 봉사하고 싶다고 말한다. 회원들 중 가장 연장자로서 올해 77살인 김영목씨는 이발을 마치고 말끔해진 사람들의 모습을 보는 것이 지금 무엇보다 큰 인생의 기쁨이라 말한다.  김씨는 “3년 전 서울에서 내려와 거제에서 지내다 우연히 들린 이발소에서 아름회를 전해 듣고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며 “사정이 생겨 봉사를 못 가게 되는 날에는 이제 하루 종일 기분이 찜찜할 정도다”고 웃어 보였다.

김씨의 답변이 끝나자 본인은 막내라며 밝게 웃던 배희순씨는 봉사를 통해 본인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됐다고 한다.    
배씨는 “최근 요양원에 봉사를 나갔을 때 병상에 누워 계신 어르신들과 병상 끝에 붙은 그 분들의 이름표가 눈에 들어왔다”며 “누구에게나 이런 상황이 오고, ‘내 이름도 머지않아 저곳에 붙어 있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내 몸이 조금이라도 멀쩡할 때 많이 돕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본인들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가위를 들고 나서겠다는 아름회 회원들. 이들이 만들어내는 경쾌한 가위질 소리가 지역 곳곳에 울려 퍼지길 기대해본다.  

 

거제중앙신문  skok@geoj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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