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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청노동자 블랙리스트에 오를까 산재신청도 겁이 납니다”

실태조사 결과 응답자 44%가 ‘있다’
취업 불이익·징계·해고·현장 감시 등
산재처리·노동자권리 주장 등이 이유

#지역 조선소 하청업체에서 근무하던 A씨는 2004년 하청노조에 가입한 뒤 단 한 번의 투쟁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이후 업체의 폐업으로 다른 지역에서 일하던 A씨는 12년이 지난 2016년 당시 근무했던 조선소의 다른 하청업체에 취직을 위해 이력서를 냈지만, 전산상 ‘노조에러’로 표시된다며 취업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관계자를 만나 더 이상 조합원이 아니라는 확인서를 주려고 했으나 만남은 불발로 그쳤다.

#지난해 7월 지역 조선소 사내하청업체의 물량팀에서 일하던 김모씨가 목숨을 끊었다. 앞서 임금을 체불한 회사를 상대로 집단 항의한 적이 있던 김씨는 석연치 않은 이유로 동료 및 후배들과 함께 양대 조선소 하청업체에 재취업이 막히자 크게 자책했다고 한다. 어렵게 들어간 회사에서 또다시 부당한 퇴사 압력이 가해지자 그가 근무하던 장소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조선업 하청업체 노동자의 상당수가 업계 내에 ‘블랙리스트’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거제시비정규직근로자지원센터는 지난 8일 거제시공공청사 대회의실에서 ‘조선산업 하청노동자 블랙리스트 실태조사 결과 발표 및 대안마련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날 토론회는 조선하청노동자 블랙리스트 실태조사 대한 결과보고와 블랙리스트 피해 사례, 토론, 방청객 질의 및 답변, 자유발언 순으로 진행됐다. 조사결과를 발표한 이은주 조사팀 연구위원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블랙리스트에 올라가는 것이 두려워 현장에서 다쳐도 산재 신청을 꺼리는 것으로 드러났다”며 “노동계 블랙리스트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진상조사와 그에 합당한 처벌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이 지난 4월부터 6월까지 거제·통영·창원·울산·목포지역 조선업 비정규직 926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중 44.41%에 해당하는 405명의 하청노동자가 ‘블랙리스트가 있다’고 응답한 것으로 나타났고, 이로 인해 각종 불이익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블랙리스트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한 질문에 405명의 응답자 중 146명(28.2%)은 ‘동료가 경험했다’고 답했고, 52명(10.0%)은 ‘본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본인이 직접 경험했다’는 응답자는 48명(9.30%)으로 집계돼 블랙리스트가 있다고 생각하는 노동자 중 절반에 달하는 246명(47.6%)이 직·간접적으로 블랙리스트를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블랙리스트를 경험했다고 응답한 노동자들에 의한 불이익 유형은 취업·임금 불이익, 징계·해고, 작업시간(잔업 및 특근) 불이익, 감시 및 현장통제 등이 지목됐다. 자신이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이유에 대해 13명은 “회사 부조리에 항의해서”라고 답했다. 노조활동을 하거나 노동자 권리를 주장한 뒤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밝힌 노동자는 각각 8명이었다. 산재처리를 요구(6명)하거나, 평소 밉보였기 때문(4명)이라는 응답도 있었다.

응답자들은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현대미포조선, 삼호중공업, 성동조선 등 원청업체도 블랙리스트로 조선업 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을 줬다고 주장했다. 김동성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은 “블랙리스트를 근절시키고자 하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있다 해도, 한두 단체와 피해 당사자 혹은 소수의 활동가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가능하지 않을 것이”이라며 “법과 제도의 정비와 함께 국가적 차원의 근절방안 마련은 물론 지역사회 각계각층의 지속적인 관심과 적극적 대응이 절실히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토론에 참석한 법무법인 희망의 유태영 변호사는 “블랙리스트는 원청 측에서 관리와 통제가 가능한 규모로 노동자의 목소리가 분출될 때 발생하는 과도기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유 변호사는 “조선업종 블랙리스트에 대한 적발·수사·처벌·재발 방지 등에 대한 대책 마련이 이뤄지고, 이것을 경험한 노동자들이 더 이상 자기검열을 경험하지 않고 노조에 가입하는 등 적극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찾아가야 한다”며 “이 같은 과정을 통해 블랙리스트의 필요성 자체가 사라지는 선순환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강성용 기자  skok@geoj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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