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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재료에 정성까지 한가득, 나누는 훈훈함에 힘든 줄도 몰라

하청면 주민자치위, 사랑의 김장 나누기
각종 단체 회원들 참여해 일손 거들어
배추 1000포기 치대며 웃음꽃 피어나
차가운 바람에도 아랑곳 않고 작업 열중
힘겨워하는 이웃들에 작은 위로 돼주길

본격적인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김장철이 돌아왔다. 예나 지금이나 겨울철 기본 먹거리는 김장 김치. 때문에 이 시기에 김장은 각 가정에서 이웃, 친척들과 함께 너나없이 치르는 연중행사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형편이 마땅치 않은 가정에서는 이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다. 힘든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이들에게 김장김치는 그림의 떡일 뿐이다. 지난 8일 힘들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이른 아침부터 팔을 걷어붙인 사람들이 있었다. 하청면 주민자치위원회(위원장 김동석)가 매년 주관하고 있는 ‘사랑의 김장 나누기 행사’가 열린 이날 하청면 복합청사 앞 공터는 젓갈과 고춧가루 냄새가 진동하고, 시끌벅적한 목소리로 소란스러웠다. 김장김치를 담기 위해 하청면 새마을부녀회·지도자회·생활개선회, 주부민방위대, 부녀의용소방대, 농협 농가주부회,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적십자봉사회·동백회 등 다양한 단체의 회원들이 일손을 거들었다.

김동석 위원장은 “김장 담그기 행사는 하청면 주민자치위의 마지막 연중행사이자, 각 면·동에서 이뤄지는 김장 행사 중 가장 큰 규모로 이뤄지고 있다”며 “작은 정성이지만 추운 겨울 힘겹게 살아가고 있는 지역 주민들이 소외받지 않고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터 한쪽에는 전날 소금에 절인 배추가 쌓여 산을 이루고 있었다. 1000포기의 배추가 맛있는 김치로 변신하는 이곳에서는 배추심을 잘라내고 배춧잎의 손상된 부분을 솎아내 다듬는 과정이 진행됐다.

배추 한 포기 한 포기를 일일이 살피고 손봐야 하기 때문에 가장 오래 걸리고 힘든 과정 중 하나다. “아이고 허리야, 나 이제 못 하겠다. 이게 허리도 못 펴고 제일 힘드네.” 칼로 배추심을 잘라내던 제영수(여·67)씨가 허리를 펴며 울상을 짓는다. 다듬어진 배추의 물기를 꼭 짜서 공터 앞 긴 탁자로 옮기는 작업은 남자들의 몫이다. 젊은 청년부터 백발의 어르신까지 나섰다. 군복을 입고 열심히 배추를 옮기던 하청면대의 김수범 상병의 이마에는 어느새 구슬땀이 맺혔다. 김 상병은 “좋은 일에 도움을 보태게 돼 뿌듯하다”고 말하며 배추 나르기에 열중했다.

마당 앞 긴 탁자에는 옮겨진 절인배추와 빨간 양념이 도열한 상태. 탁자를 사이에 두고 빨간 장갑을 낀 여성봉사자 50여명이 한 줄로 길게 늘어섰다. 배춧잎 사이사이에 양념을 채워 넣는 순서다. 양념은 김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가장 중요한 재료다. ‘김장속’이라고도 부르는 양념을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김치의 맛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이번 행사에 사용된 김장속에만 다양한 종류의 재료가 들어갔다. 김두연 하청면 새마을부녀회장은 “김장김치 양념은 무, 파, 갈아 넣은 생새우, 새우젓, 멸치, 멸치 액젓, 명태, 미나리, 버섯, 깨소금, 생강, 마늘 등 10가지가 넘는 재료를 넣어 깊은 맛을 냈다”며 “김치를 받아 드시는 모든 분들이 맛있게 드셨으면 하는 바람으로 정성을 들여 만들었다”고 말했다.

봉사자들은 배추에 양념을 입히느라 분주했다. 배추는 탁자에 풀어놓기 무섭게 양념이 발라졌다. 능숙한 손놀림으로 배춧잎 안쪽 깊숙이까지 꼼꼼하게 양념을 입히는 여성봉사자들은 ‘주부 9단’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김치를 길게 찢어 연신 다른 봉사자들의 입안 가득 넣어주던 이군자씨는 “봉사자들의 정성이 들어가서인지 오늘 김치맛이 너무 좋다”며 “분위기가 너무 즐거워 봉사하러 왔다가 오히려 에너지를 얻고 간다”며 밝게 웃어 보였다.

하청면사무소 직원도 동참했다. “양념을 안 주면서 배추만 주면 어떡해. 여기 양념 다 떨어졌습니다. 얼른 갖다 주세요.”, “김치속 다 바른 배추들 가져가 주세요.” 장주영 주무관이 활력 넘치는 목소리로 김장을 진두지휘했다. 올해로 4번째 김장 담그기 행사에 참여한 장 주무관은 “매년 행사를 할 때마다 지역 주민들과 웃고 대화를 나누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며 “정성껏 담근 김장김치가 지역 어르신들과 어려운 이웃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힘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지난해 10월 하청면에서 처음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김명환 주무관은 이곳저곳 분주히 쫒아 다니며 일손을 거들기 바빴다. 정신없는 김장 현장이지만 김 주무관의 얼굴에서는 밝은 표정이 떠나질 않았다. 김 주무관은 “즐겁게 김장을 담그시는 주민들의 표정을 보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진다”며 “오늘 같이 마을 주민들이 함께 모여 화합할 수 있는 자리들이 많이 생겨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쉴 새 없이 배추에 양념을 버무리다 보니 점심시간이 찾아왔다. 김장날이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돼지수육과 제철 굴이 점심상에 차려졌다. 봉사자들은 막 담근 김치를 손으로 죽죽 찢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돼지수육과 탱글탱글하게 살이 오른 굴에 말아 먹으며 연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정숙(여·63)씨는 “맛이 아주 꿀맛”이라며 “열심히 일한 뒤 먹어서 맛이 더욱 좋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뽀얀 국물에 시원한 맛이 일품인 대구탕까지 곁들인 맛난 점심을 먹은 뒤에도 김장 담그는 일은 계속됐다. 약 4시간 동안 부지런히 손들이 오가자 산더미처럼 쌓여 있던 흰 배추들은 어느새 빨간 양념을 입은 채 모두 270상자에 포장됐다. 김장을 마친 자원봉사자들은 빨간 고무장갑을 벗고 김치가 든 하얗고 네모난 상자를 집어 든 채 길을 나섰다. 이날 담궈진 김장은 하청지역 내 홀로 사시는 어르신, 형편이 어려운 장애인 가족, 경로당 등에 골고루 전달됐다.

이날 청사 앞에 모인 사람들의 표정은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밝고 행복해 보였다. 웃음꽃이 활짝 폈던 하청면 복합청사는 이들이 떠난 뒤에도 따스한 기운이 감돌았다. 주린 배를 넉넉히 채워 줄 김장김치의 풋풋한 향기와 함께. 

 

 

강성용 기자  skok@geoj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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