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중앙칼럼/송년에 느끼는 몇 가지 단상옥형길 칼럼위원

들녘은 어느새 휑하니 비었다. 낫으로 한 포기 한 포기 베어 수확하던 시절에는 가을 추수가 한 달쯤 걸렸지만 지금은 일주일이면 끝이 난다. 경지정리에 의한 농업기반의 조성과 농업의 기계화가 만들어 낸 결과이다. 산골마을까지 경지정리가 되고 트랙터가 그 육중한 바퀴를 굴리며 경운(耕耘)과 정지(整地)작업은 물론 이앙(移秧)과 탈곡(脫穀)까지 일관성 있게 해내기 때문이다.

반세기 훨씬 전, 중등학교 사회 교과서에 실렸던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끝없이 넓은 밀 농장에 이상하게 생긴 큰 자동차가 굴러가면 곡물 자루가 떨어져 나오고 한편으로는 하얀 포장지로 뭉쳐진 큰 밀짚 덩어리가 띄엄띄엄 뒹굴어져 나왔다. 그것은 밀을 수확하는 미국의 농촌 풍경이었다. 

우리의 농촌 들녘도 이제 그런 시대를 맞은 것이다. 불과 반세기의 세월에 엄청나게 바뀐 농촌 풍경에 격세지감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소회(所懷)는 아닐 것이다. 그뿐이 아니다. 토담집 초가지붕은 슬레이트 지붕의 시대를 거쳐 이제는 현대식 양옥으로 바뀌었다. 마음속의 이국적 풍경이 현실이 된 시골이다.

그러나 그런 현대적이고 풍요로운 농촌 풍경에서는 어린 시절 농촌의 그 아늑함은 사라지고 없다. 등고선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논두렁의 그 자유로운 분위기나 논 가운데 원통으로 쌓아 올린 짚가리의 작은 풍요를 느낄 수가 없는 것이다. 초가지붕의 그 소박함도 사라져 버렸다. 고향의 낭만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제 고향은 인걸도 떠나고 환경도 바뀌고 개발에 밀려 산천도 변해 버렸다. 얻은 것이 큰 것인지 잃은 것이 큰 것인지는 견줄 수가 없지만 한 해를 보내는 허전함과 함께 고향을 찾은 마음이 공허해진다.

그래도 가을걷이가 끝난 시골 마을에는 이 가을, 한 번쯤은 문중별로 출향인들이 모여드는 날이 있다. 성묘(省墓)와 향사(享祀)를 봉행해 조상님의 음덕(蔭德)을 기리는 날이다. 그래야 또 삶의 지속적인 안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숭조(崇祖)가 곧 효(孝)의 근본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어린 시절, 문중별 향사는 며칠씩 계속되는 큰 잔치였다. 선영(先塋)에서는 하얀 두루마기를 입은 어른들이 제(祭)를 올리고 아이들은 푸짐한 제물에 구미가 당겨 덩달아 산으로 올랐다.

지금은 산허리 여기저기에 흩어져 모셔졌던 선조의 유택(幽宅)을 문중별로 한곳으로 모아 집단화시켰다. 이름하여 문중묘원(門中墓園) 또는 가족묘원이라 한다. 사자들의 집단 거주지다. 산 자들의 아파트 단지가 저승에도 적용된 것인가 보다. 향사는 묘원 앞에 세워진 사우(祠宇)에서 모셔진다. 산길을 내려오며 어린 시절의 그 토속적인 순박함이 사라진 것에 몹시도 허전함을 느낀다. 삶이 산 자들의 편의에 따라 너무 제도화되고 규격화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늦가을의 인간사에는 또 결혼이라는 것이 있다. 요즘 결혼은 계절이 따로 없지만 그래도 결혼은 추수가 끝난 가을에 행해지는 관례(冠禮)였다. 시월부터 결혼 청첩장이 날아든다. 주소가 바뀌어도 전화번호가 바뀌어도 청첩장은 차질 없이 찾아온다. 세상에 우리나라의 상부상조 문화만큼 철저하게 실천되는 제도가 지구상에 또 어디 있을까 싶다.

섣달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송년 모임 안내장이 겹쳐진다. 한해 잘 살았으니 얼굴 한 번 보고 넘어가자는데 거절할 명분이 있겠는가. 만나 보면 반갑고 편안하다. 저마다 가슴속에는 말 못 할 희비의 사연들이 있겠지만 적어도 이날만은 모두가 밝은 표정으로 행복해 보인다. 어려움이 있다한들 구태여 이런 자리에서 징징댈 필요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헤어져 돌아가는 뒷모습에는 간혹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운 친구도 있다. 그래도 연말에는 이렇게 만나고 헤어져야 남은 날들의 마음이 가볍다.

나이 들어가니 모두들 건강이 문제고 대화 또한 건강이 화제다. 달포 전 친구의 자녀 결혼식장에서의 일이다. 오래전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던 친구를 만났다. 그간의 소식이야 간혹 전해 듣기는 하였지만 대면의 기회는 이십여 년만이었다. 반가워서 다가갔다. 팔이라도 벌려 껴안을 것 같은 나의 행동과는 달리 거리를 두며 미적거리는 그의 행동이 의아스러웠다. 가까이에서 본 그의 모습은 몹시도 초췌해 보였다. 늦가을이라 기온이 찬데 헐렁한 바지를 입고 돌아서는 그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어떻게 지냈느냐. 왜 한 번도 만날 기회가 없었을까” 반가워 쏟아내는 나의 수다와는 달리 그의 대꾸는 “너 참 건강하구나” 그 한 마디였다.

그는 이제 세상을 떠났다. 퇴직 후 국제 빈민구제 운동을 하던 그가 어떻게 제 몸 하나 구제하지 못하였을까 싶다. 외면하듯 돌아서서 멀어져 가던 그의 쓸쓸한 뒷모습이 지금도 자꾸만 떠오른다. 올 한 해를 보내며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장면이 되었다. 그래 건강해야지, 건강해야 한다.

송구영신(送舊迎新)! 이제 정유년을 보내고 무술년 새해를 맞이할 때다. 보내는 해의 단상들을 통해 새해의 마음가짐을 다져야겠다. 새해에는 과거와 현대가 적당히 공존하는 삶의 중용을 이루며 살아야겠다. 숭조의 마음으로 효친(孝親)과 친교(親交)를 실천해 융합사회(融合社會)를 이루어야 할 것이며,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건강해야겠고, 결코 욕심부리지 않는 성실한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한운불우(閑雲不雨)라 하지 않던가. 빈 하늘을 떠도는 한가로운 구름은 비가 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게으름 피우고 한가롭게 놀기만 한 사람은 가을이 되어도 거둘 게 없을 것이다.
무술년 송년에는 한가득 수확의 기쁨으로 충만하기를 기대하며 힘차게 새해를 시작할 일이다.

거제중앙신문  skok@geojenews.com

<저작권자 © 거제중앙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거제중앙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