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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의 반란 ‘대금산 밴드’, 신뢰와 열정 위에 쌓아올린 짜릿한 연주극

해가 지고 기다렸다는 듯 몰려온 칠흑 같은 어둠이 사방을 휩쌌던 지난 24일 장목면 거제야구랜드의 야구경기장. 귓전을 때리는 칼바람 소리만 존재하던 고요 속에서, 옅지만 비교적 또렷하게 ‘쨍쨍’거리는 소리가 멀리서부터 들려왔다.

곧장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고 시선이 멈춘 곳은 야구장 오른편에 위치한 한 공터. 완전한 어둠에 잠긴 것만 같던 그곳에서 컨테이너 건물 창밖으로 새 나오는 작고 희미한 불빛 하나가 눈에 박혔다. 불빛을 따라 조심스럽게 그곳으로 발길을 내디뎠다. 불빛에 가까워질수록 쨍쨍거리는 소리는 더욱 선명해졌고, 그 소리 위에 얹어져 쿵쿵거리며 울리는 둔탁한 소리와 팽팽한 줄을 튕기는 듯한 경쾌한 소리가 한데 어우러졌다.

컨테이너의 문을 열자 그 소리의 주인공들이 눈에 들어왔다. 키보드·드럼·기타·베이스를 연주하며 환한 표정을 짓고 이들은 바로 지난해 제1회 청주 전국 주민자치프로그램 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한 대금산 밴드(단장 김규철)였다.

공포의 외인구단, 음악 하나로 뭉쳤다
대금산 밴드는 지난 2014년 김규철 단장이 장목면 주민자치위원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던 때 주민자치프로그램으로 밴드교실을 열며 탄생했다. 김 단장은 “2014년 당시 장목면 주민자치프로그램은 풍물교실밖에 없었다”며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고민 끝에 밴드교실을 열게 됐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김 단장이 음악에 조예가 깊거나 악기 연주 경험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음악을 좋아하거나 악기 연주에 관심이 있는 주민들과 함께 배우고 즐기는 모임을 만들어보자고 뜻을 모은 것이 출발점이었다. 드럼을 맡고 있는 김 단장을 주축으로 기타 정일수·이정삼·이옥철, 건반 장명순·선혜경, 베이스 강둘필, 보컬 임순규 등 8명으로 구성된 대금산 밴드는 단원들마다 밴드에 참여하게 된 이유도 제각각이다.

김 단장의 아내인 강둘필씨는 “어느 날 갑자기 남편으로부터 ‘사람이 없다. 너라도 가자. 베이스 좀 맡아줘’라는 말과 함께 끌려오게 됐는데, 한 번도 악기를 연주한 적이 없는 아줌마가 베이스 기타를 연주하려니 처음에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고 말했다. 정일수씨는 “잘하는 건 아니었지만 어릴 때 통기타 하나만 있으면 하루 종일 신나게 놀고, 심지어 기타를 안고 잘 정도로 좋아했다”며 “밴드교실이 열리는 걸 알고 바로 신청했다”고 회상했다.

창원에서 몇 년 전 거제로 넘어와 살고 있다는 선혜경씨의 사연은 더욱 재밌다. 선씨는 “남편이 저보다 먼저 거제에 내려와 있었는데, 어느 날 남편이 밴드교실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며 “뭔가 이상한 모임인 것 같아 극구 반대했다가 오히려 지금 제가 이렇게 밴드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단원들을 박장대소하게 만들었다. 음악 외인구단인 이들을 열정과 헌신으로 가르치고 있는 장목통기타교실 우만수 선생은 단원들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하고 있다. 

여름철 연습실 안은 끓는 용광로
밴드교실을 개설한다고 했지만, 막상 연습할 곳조차 없었다. 장목면은 아직 오래된 청사를 면사무소로 사용 중이라 그곳에서 제대로 된 연습을 하기는 힘들었다. 김 단장은 개인 사업을 통해 연을 맺고 지내던 거래처 대표에게 부탁해 컨테이너 두 동을 지원받았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컨테이너를 놓을 부지가 필요했다. 백방으로 수소문 한 끝에 현재 컨테이너가 놓인 곳의 지주가 무상으로 땅을 내줘 터를 잡았다. 김 단장은 “내부에 방음시설을 만든답시고 계란판을 구해와 단원들과 함께 며칠 동안 직접 다 붙였다”며 “밴드 연습 소리에 민원이 들어온 적이 있을 정도로 완벽한 방음은 되지 않지만, 이렇게 연습실을 갖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강둘필씨는 “두 동의 컨테이너를 붙여 연결한 탓에 연결부 사이로 빗물이 새기 때문에 여름철 비가 올 때는 연습실 안에서 빗물을 닦아내기 바쁘다”고 옆에서 거들며 웃어 보였다.

에어컨이 없는 컨테이너에서 연습하는 여름철은 더욱 열악하다. 대금산 밴드는 연습소리가 주변에 피해를 끼칠까 봐 창문 하나도 열지 못한다. 가만히 있어도 더운 여름이면 뜨겁게 달궈진 컨테이너 박스 안에서 연습을 한다. 팀워크가 좋다는 대금산 밴드도 힘든 시기가 이때다. 높은 불쾌지수로 서로에게 예민할 정도로 여름철 컨테이너 안은 용광로를 방불케 한다고 한다. 선혜경씨는 “여름에는 다들 머리에 수건을 하나씩 두르고 연습을 하는데, 그래도 주변은 떨어진 땀방울로 금방 흥건해지고 옷은 흠뻑 젖기 일쑤”라며 “워낙 예민해지는 탓에 연습 중 다투기도 하지만 이내 또 풀고 즐겁게 연습한다”고 말했다. 

전국에 내민 도전장, 최우수 영예로
긴 시간은 아니지만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합을 맞춘 대금산 밴드는 2017년 9월 열린 거제시 주민자치센터 프로그램 발표회에 참가했다. 좋은 성적이 목표가 아니었지만, 정당하게 평가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단원들은 전했다. 다른 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물론 1·2위로 뽑힌 팀들이 좋은 무대를 펼쳤지만, 심사위원들과 친분이 있는 팀이라는 이야기가 나돌았다. 정당하지 못한 평가라는 마음에 상실감이 컸던 대금산 밴드는 한 동안 슬럼프가 찾아오기도 했다. 김 단장은 잠시 밴드를 접을까 생각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대금산 밴드는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청주에서 전국 주민자치프로그램 경연대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접하고 전국에 도전장을 내밀어보자고 단원들 모두 의기투합했다. 정일수씨는 자다가도 일어나 기타 연습을 할 정도였다. 
강둘필씨는 “전국 경연대회 참가를 두고 단원들끼리 이야기를 나눴을 때 단 한 명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며 “참가를 마음먹고 대회가 있는 날까지 한 사람도 연습에 빠진 적이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런 대금산 밴드의 노력이 통했던 것일까? 캠코더로 촬영한 밴드 무대 동영상을 예선심사 자료로 제출한 이들은 경남에서는 유일하게 전국 12개팀에게만 허락된 본선에 진출하게 됐다.
단원들은 그 동안 익히고 다져온 실력들을 보여주자고 다짐했다. 김 단장은 “순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열심히 연습한 만큼 최선을 다하자고 단원들을 다독였다”며 “그러나 대회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초 대회가 열리는 곳은 야외무대였다. 그러나 우천 관계로 갑자기 장소가 실내로 변경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야외무대에 마련된 모든 음향장비를 실내로 옮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음향시설이 중요한 밴드의 특성상 불리한 조건 속에서 무대에 오르게 된 것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단원들에게 외부적인 요소는 중요하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무대에 열정을 쏟았고, 함께 흘려온 땀방울의 결과는 최우수상이라는 보답으로 돌아왔다. 거제를 넘어 전국을 사로잡은 짜릿한 역전극이었다. 김 단장은 “우리 밴드가 노력한 만큼 정정당당하게 평가 받은 점이 가장 좋았다”며 “그간 단원들과 연습했던 시간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면서 많이 뭉클했다”고 털어놨다.

대금산 밴드는 3월17일 창단 4주년을 맞는다. 기념 콘서트도 준비 중이다. 김 단장과 단원들은 “능숙한 프로들의 모임을 만들자는 것이 아니었던 만큼 앞으로도 한 곡부터 느리더라도 천천히 가는 것을 목표로 서툴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다는 것을 지역에서 보여주고 싶다”며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주민자치프로그램이 지향해야 할 목적이라고 생각한다”고 입을 모았다.

강성용 기자  skok@geoj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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