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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쾌한 들배지기와 뒤집기 한판, 씨름의 미래가 그녀들의 어깨 위에…

1980~1990년대 씨름은 최고 인기의 스포츠 종목이었다. 당시 ‘씨름황제’ 이만기, ‘모래판의 신사’ 이준희, ‘인간기중기’ 이봉걸에 이어 ‘모래판의 악동’ 강호동까지, 씨름 천하장사는 슈퍼스타를 능가하는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 씨름의 인기는 예전 같지 않다. 어린 학생들에게 씨름은 명절에나 볼 수 있는 ‘옛날 스포츠’로 인식되고, 사람들의 관심으로부터 조금씩 멀어져갔다. 하지만 조금씩 씨름 인기의 불씨가 피어오르고 있다.

침체된 씨름의 재도약을 이끌 견인차 역할을 할 이들은 바로 최근 씨름판에서 인기몰이 중인 여자 씨름선수들이다. 덩치 큰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씨름판에서 이들은 남자선수 못지않은 힘과 기술로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선사하며, 최근 모래판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2월14일부터 19일까지 강원도 횡성군에서 개최되는 ‘2018 설날장사씨름대회’에서도 여자씨름 장사들의 치열한 샅바싸움이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할 예정이다. 그리고 거제에서도 이번 대회를 위해 모래판 위에서 굵은 땀방울을 쏟고 있는 여성 씨름선수들이 있다. 바로 거제시청 여자씨름단이 그 주인공이다. 거제시청 여자씨름단은 박명균 단장, 손영민 부단장, 윤경호 감독과 무궁화급(80kg 이하) 정지원·이다현 선수, 국화급(70kg 이하) 조아현·서민희 선수, 매화급(60kg 이하) 한유란 선수로 구성돼 있다. 현재 정식단원은 아니지만 상문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이나영 학생이 훈련을 함께하고 있다.

높아진 인기에 문 두드리는 선수 늘어
윤경호 감독은 여자씨름 인기가 올라가고 있는 건 확실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최근에는 여자씨름 대회 시청률이 남자씨름보다 더 높았을 때가 있었다고 한다.

여자 씨름의 상승세는 신생팀 창단 움직임에서도 드러난다. 현재 전국에는 구례군청, 콜핑, 거제시청과 함께 나주 호비스까지 4개의 여자씨름단이 있다. 올해는 안산시와 화성시에 2개의 팀이 더 생긴다. 2019년에도 2개 팀이 더 창단될 것이라는 움직임이 있다.
여자씨름의 인기가 올라가면서 선수들의 주가도 덩달아 상승하고 있다. 정상급 여자씨름 선수들은 다른 인기 스포츠만큼 좋은 대우를 받는다. A급 선수는 연봉과 상금을 합쳐 1년에 억대 몸값을 받는다.

거제시청 여자씨름단원들도 다른 종목에서 씨름으로 진로를 바꾼 경우가 많다. 정지원 선수는 유도 국가대표에서 불의의 부상을 당해 스포츠 트레이너로 활동하던 중 제안을 받고 씨름판으로 뛰어들었다.
다른 선수들도 대부분 다른 종목 출신이다. 조아현·한유란 선수는 유도선수로 활동하다 윤 감독의 제안으로 씨름 선수로 전향했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한 서민희 선수도 이전까지 역도를 했다. 윤 감독은 “여자씨름에서는 아직 어릴 때부터 전문적으로 씨름을 한 선수들을 찾기가 쉽지 않다”며 “다만 다른 종목들보다 여자씨름선수에 대한 처우가 좋은 편이라 씨름으로 전향하는 선수들이 많다”고 말했다.

천신만고 끝에 창단된 거제시청 여자씨름단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자가 씨름선수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활동할 팀도 충분하지 않았다. 전국 최초로 창단된 구례군청과 최초의 실업팀인 콜핑이 유일한 여자씨름단이었다. 거제에서도 여자씨름단을 창단하는 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윤 감독은 “씨름의 부흥을 위해 2014년 고향 거제에서 여자씨름단을 창단하려고 했지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거제시에서는 어려운 지역경기로 인해 씨름단 지원을 위한 예산 편성이 어렵다는 답변만 계속했고, 예산안이 반영된 후에도 반대하는 시의원들이 적지 않았다. 윤 감독은 “여자씨름단에 대한 청사진과 국내 모든 씨름대회가 텔레비전에 중계되는 만큼 거제시청 여자씨름단으로 인한 거제시 홍보효과에 대해 꾸준히 강조했다”며 “결국 3년간의 노력 끝에 지난해 1월1일 창단이라는 기쁜 소식을 전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윤 감독은 전국을 돌며 지금의 단원들을 끌어모았다. 한 명, 한 명 직접 선발한 애제자들이다. 한유란 선수는 “유도선수로 활동하던 팀의 계약이 끝나가던 시점에 윤 감독님으로부터 여자씨름단 입단 제안을 받았다”며 “예전부터 저의 유도 경기를 직접 보고 계셨다는 말씀을 들었다”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풀어내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꾸린 팀은 창단 원년, 좋은 성과를 만들어냈다. 정지원 선수가 지난해 열린 제9회 구례여자장사 및 전국대학장사씨름대회 비룡부(1부) 통합장사 결정전에서 대회 우승후보로 꼽혔던 ‘여자 이만기’ 임수정(콜핑)을 꺾고 생애 첫 통합장사 타이틀을 차지한 것이다. 정 선수는 임 선수를 상대로 첫판을 밀어치기로 가져온 데 이어, 둘째 판에서도 밀어치기로 승리를 거두는 이변을 연출하며 새로운 장사로 등극했다.

“남자씨름과는 또 다른 여자씨름만의 매력이 있죠”
거제시청 여성씨름단원들과 윤 감독은 입을 모아 “여자씨름은 남자씨름과는 구별되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정지원 선수는 “여자는 남자보다 몸이 부드럽고 유연해 씨름기술들이 깔끔하고 디테일한 재미가 있다”며 “대회를 가면 관객 분들이 남자씨름 경기보다 여자씨름 경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환호를 보내준다”고 말했다. 윤 감독은 “여자 선수들은 탄탄하고 균형 잡힌 체형을 갖춰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순간적인 힘과 기술이 수준급이다”며 “남자 선수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뛰어난 기술을 선보이는 선수가 많고, 여자 종목 특유의 아기자기한 면도 있다”고 소개했다.

여기에 여자씨름 특유의 빠르고 공격적인 승부도 관중의 흥미를 돋운다. 경기 시작과 함께 빠르게 공격을 시도하고, 시원하게 승부가 갈린다. 한유란 선수는 “경기 시간이 5분인 유도를 해오다가 1분 안에 승부를 짓는 씨름경기를 보고 짜릿함을 느꼈다”면서 “앞으로 많은 씨름 팬들이 여자씨름의 화끈한 매력에 빠져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침체된 씨름, 여자씨름이 도약의 발판 만든다
여자씨름단의 하루는 훈련의 연속이다. 새벽에 간단한 몸 풀기 운동을 하고, 오전에 웨이트 트레이닝, 오후에는 씨름장에서 실전 훈련을 한다. 저녁 식사 이후 다시 웨이트 트레이닝과 개인 훈련을 진행한다. 주말을 제외하면 거의 온종일 훈련에만 몰두한다.

한때는 다들 각자의 이유로 운동을 접어야 했던 단원들은 현재 조금씩 씨름판 위에서 장밋빛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다. 정지원 선수는 “꼭 최정상의 선수가 돼서 샅바를 내려놓는 그 순간까지 모래판에서 혼신의 힘을 다하고 싶다”고 각오를 밝혔다. 서민희 선수는 “열심히 따라가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어려운 게 사실이다”면서도 “더 열심히 배우고 싶고, 선배들처럼 되고 싶다는 의지가 크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씨름에 전념하고 있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윤 감독은 단원들의 선전을 기대하면서도 여자씨름 발전을 위해 더 많은 라이벌이 등장했으면 하는 솔직한 바람을 전했다. 그는 “여자씨름단에 대한 관심과 투자를 통해 다양한 지자체와 기업에서 창단에 나서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윤 감독의 바람처럼, 더 많은 팀들과 여성선수들이 모래판에 등장한다면 한국 여자씨름 앞에는 더 밝은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 ‘통쾌한 뒤집기’ 한판을 선사하며 많은 사랑을 받았던 민속씨름이 여자씨름의 성장을 통해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지 주목해 보자.                        

강성용 기자  skok@geoj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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