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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과정곡은 우리 곁에 있었다

(前腔) 내님믈 그리와 우니다니

(中腔) 山 졉동새 난 이슷요이다

(後腔) 아니시며 거츠르신달 아으

(附葉) 殘月曉星이 아시리이다

(大葉) 넉시라도 님은  녀져라 아으

(附葉) 벼기더시니 뉘러시니잇가

(二葉) 過도 허믈도 千萬 업소이다

(三葉) 믈힛 마러신뎌

(四葉) 읏브뎌 아으

(附葉) 니미 나 마 니시니잇가

(五葉) 아소 님하 도람 드르샤
            괴오쇼셔

위에서 소개한 가요는 바로 정서 선생이 지은 정과정곡 가사의 전문이다. 우리가 지금에 와서 이 가요에 주목하게 된 것은 정서선생이 고려 18대 의종과 연관된 역사적 배경이 있기 때문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의종은 1170년 정중부의 무신 난으로 거제도 둔덕기성으로 피신하여 1173년까지 3년간 둔덕면 거림리에 소재한 거제현(고 군현치소지)과 둔덕기성을 중심으로 거처했다.
실제 둔덕기성은 의종이 개경 환궁과 복위를 위해 절치부심한 역사적 현

장이기도 하다.
정서선생 또한 의종이 고려18대 왕으로 등극하면서 간신들의 참소로 부산 동래고향에서 6년, 거제도 오량성 배소지에서 13년의 무고한 유배생활을 한 역사 기록 또한 팩트(fact)이다. 2012년 12월에 거제문화예술회관에서 거제유배문학 세미나의 발제자로 나선 일운면 출신 고영화 고전문학 연구가에 의해 정서의 정과정곡에 관한 새로운 학설이 발표된 바 있다.
고영화 선생의 발제 요지를 언급하자면, 정서의 정과정곡은 동래가 아닌 거제에서 창작됐음을 주장하면서, 정서가 거제 유배 중에 무신 난을 피해 둔덕기성에 온 고려 의종을 직접 만났을 때 피를 토하듯이 억울함을 토로하는 심경을 지어올린 가요가 바로 정과정곡이라는 것이다.
덧붙여 정과정곡이 고전문학사에 있어 역사적 의의는 우리나라 유배문학의 효시이며, 형식면에서 향가와 시조 그리고 가사를 이어준 징검다리 역할이라는 점에서 수작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필자는 몇 년 전 칼럼에서 지역의 역사가 영화화 될 수 있고, 소설화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그런데 둔덕의 무명작가 한 분(호산 김현길 시인)이 고영화 선생이 세미나에서 주장한 새로운 학설이 계기가 돼 의종과 정서선생에 얽힌 일화를 바탕으로 ‘님 그리워 우니다니’라는 장편 역사소설의 완성을 보았다. 3월14일 둔덕싯골센터에서 출판기념회를 갖게 된 큰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역사소설을 읽어보면, 독자는 누구나 정과정곡이 거제에서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사실 앞에 서게 될 것임이 분명하다. 정과정곡은 아득한 고려 악학궤범에 실린 한 편의 가사가 아니다.
바로 우리 거제 땅에서 이루어진 숙명과도 같은 역사의 흐름 속에서 탄생된 유배문학의 효시이기에 항상 우리 곁에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벅찬 감격인가, 우리 거제인의 가슴 가슴마다 아리랑처럼 간직해야할 보물 1호 정과정곡인 것이다. -서용태-

거제중앙신문  skok@geoj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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