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사람의 향기

둔덕골로 가는 길은 봄바람이 먼저다. 고개를 넘어서자 들판은 푸른 청보리밭이다. 언제 이 겨울을 이겨내고 싹을 올렸는지 이랑마다 봄바람은 살포시 보릿닢을 흔들고 지나간다.

며칠 전 둔덕이 고향인 한 시인이 고향의 역사를 모티브로 장편 역사 소설을 쓰고 출판기념회를 했다.청명한 삼월의 하늘이 곱기도 했지만, 날씨조차 축하를 하는지 봄날의 따스함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태어나서 육십 평생이 넘도록 시인은 폐왕성과 공주샘과 의종의 이야기를 귀가 닳도록 들었다고 한다. 동랑이 태어나고 청마가 태어난 둔덕골에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이제는 소설을 쓰는 시인까지 있어서 산방산 아래 동네는 유명한 문화 예술촌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육십이 넘어 소설을 쓰겠노라 작정을 한 것도 쉬운 일이 아닌데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들며 정서와 의종과 한 여인의 사랑이야기를 엮어낸 시인의 당돌하고 엉뚱한 생각은 한 권의 장편 역사소설로 우리 곁에 다가왔다.

6.25 전쟁으로 인해 거제도에 포로수용소가 생기고 포로로 잡혀와 생활을 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많은 전쟁문학이 탄생하기는 했지만 무신의 난으로 피난 와서, 거제도 둔덕골에서 3년을 살았던 의종과, 13년을 살았던 정서의 삶을 다룬 역사소설은 일찍이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한 시인으로 인해 역사 속에 잠자던 영혼들이 깨어나고 당시의 인물들을 통해서 둔덕의 풍광과 애절하고 처절했던 그들의 삶의 흔적을 돌아보게 됨은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타임머신을 태워주는 것과 같다.

촌부 같은 김현길 시인은 우리 문협의 임원이고, 청마기념사업회의 임원으로 활동 중이다. 출판기념회가 있던 날 둔덕면에는 향수처럼 그리움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수목문화클럽의 회원들은 자신의 이웃이 이런 대단한 일을 한 것에 대해 기뻐하고 고마워했다. 쉽게 쓴 글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 한 권의 소설로 인해 거제도가, 둔덕골이 향후 많은 매체에서 또 다른 문화예술로 승화되길 바라서 일 것이다.

이성보 선생이 인사말에서 뼈있는 말을 했다. “거제도에는 또돈안골사모가 많다. 그 중에 한 사람이 김현길 시인인데 이번에는 또돈안골사모가 아니라 대박 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거였다.

문학은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들이 하는 일들이고 항상 돈 안 되는 일이기 때문에 김현길 시인의 이번 출판기념회는 그래서 더 가슴에 와 닿은 행사였다. 사람의 향기는 은은해야 좋다.

한 권의 소설이 우리에게 오기까지 지은이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요 며칠 내내 둔덕에서 봄바람을 타고 오는 사람의 향기가 청보리 밭의 푸르름처럼 싱그럽기 그지없다.

거제중앙신문  skok@geojenews.com

<저작권자 © 거제중앙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거제중앙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