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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에 대하여옥형길

외로움이 곧 고독(孤獨)이다. 고독이란 어린아이가 부모가 없거나 늙은이가 자식이 없거나 남녀가 짝이 없음을 뜻한다는 것이 사전적 의미다.
사람은 누구나 고독하지 않고 행복할 권리가 있지만 노인의 고독은 지금 우리사회가 직면한 현실의 문제가 됐다.
고독은 독거(獨居)에서부터 시작된다. 사별(死別)이나 황혼이혼, 졸혼 등으로 혼자되거나, 자식이 먼저 세상을 떠나서 혼자됐거나, 자식들에게 부양을 포기당한 노인들이 그들이다. 이에 발맞추듯 지금은 노인 독거만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독거하는 젊은이도 늘어나고 있어 점점 독거사회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아예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독신주의 젊은이, 결혼은 해도 자식은 낳지 않겠다는 무책임한 젊은이, 늦깎이 결혼으로 자녀를 둘 수 없는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그들을 보면 고독한 노령인구의 싹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다.
이의 해결책이 곧 고독한 노령인구 증가의 예방 대책이 될 것 같기도 한데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은 별반 효과가 없는 것 같다.
어느 지인의 아들은 마흔이 넘도록 결혼을 하지 않아 부모와의 심한 갈등을 빚더니 급기야 독립을 선언하고 집을 나가 독거 생활자가 됐다. 같은 이유로 다른 지인의 딸도 집을 나가 독립해 버렸다. 이렇게 늘어나는 독거사회는 곧 고독의 사회, 대화단절의 불통사회가 되어간다는 뜻이니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외로움 즉 고독은 이제 국내의 문제만은 아니다.
오죽하였으면 영국의 메이 총리가 외로움 관리 담당 장관을 임명했겠는가. 외로움은 흡연보다도 위험하고 비만보다도 위험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고 보면 이에 대한 국가적 대책이 시급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더러는 고독을 달래기 위해 반려동물을 기르고 반려 로봇을 개발하고, 식물을 기르는 등 취미생활을 하거나 전화 또는 문자, 멜 주고받기, 카톡 등으로 서로의 마음을 나눈다고 하지만 그 어떠한 것에도 깊은 마음의 고독까지 치유되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반려(伴侶)란 짝이 되는 동무를 말하는데 그 한자(漢字)를 뜯어보면 반(伴)은 사람의 반쪽을 의미하는 것으로 반드시 둘이어야 한다는 것이고 려(侶)는 사람이 서로 마주보고 대화한다는 것이니 사람이 아닌 동물이 사람의 반려가 될 수는 없는 것이며 사람의 정신세계까지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첨단 기기를 이용한 고독 달래기 또한 어느 정도 지식인 그룹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이 또한 눈이 흐려지거나 기억이 혼미해 지면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사람의 고독은 사람의 마음으로만 치유되는 것이고 사람의 마음은 사람의 영적 교감에 의해서 소통되는 것이다.
독거에 의한 외로움은 고독사로 이어지는데 2015년도 조사결과에 의하면 1인가구의 83.7%가 나 홀로 생활에 외로움을 느낀다는 답변이 나왔다.
특히 우리나라는 인구 10만 명당 25.6명의 자살로 OECD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데, 이 영광스럽지 못한 기록을 몇 년째 유지하고 있으니 자살 또한 삶의 외로움과 무관하지 않다는 결론이 아니겠는가.
또한 2017년 우리나라의 고독사는 2,010명으로 4년 만에 57%나 늘어난 것이라고 하니 해가 갈수록 고독사는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핵가족제도의 확대에 따른 1인가구의 증가와 개인주의의 팽배, 그리고 효(孝)의 실종으로 부모와의 동거와 부양을 외면하기 때문이라고 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독거의 근원은 조손(祖孫)관계의 소원(疎遠)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
며칠 전 지하철 경로석에 노인 한 분만 앉아 계셨다.
옆자리는 비어 있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젊은이가 서 있길래 앉으라고 했더니 한사코 사양하면서 다른 위치로 가 버리는 것이었다.
그 젊은이의 행동은 겸손이나 얼마 후 노인 승객이 오면 다시 일어서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이 아니라, 노인 옆에 앉기가 싫어서 그러는 것 같았다. 요즘의 젊은이들은 노인들과 친숙하지 않다. 어쩌면 노인을 자기와는 다른 부류의 인간으로 보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조부모와의 접촉이 많지 않아 관계가 소원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것이 나의 진단이다.
옛날에는 아이들과 가장 친한 사이가 할아버지와 할머니였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양육에 따른 각종 규제를 집행하는 가장 엄한 분이셨고,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가장 관대한 보호자였으며 부모의 꾸중이나 체벌에 대한 변론자였기 때문이었다.
또 할아버지, 할머니는 귀한 음식이 생기면 따로 뒀다가 손주에게 주시곤 하셨기 때문에 조손간 물질적 유대도 깊었다. 그래서 손주들은 항상 할아버지 할머니 곁에 머물기를 좋아했다.
그 뿐이 아니다. 자식이 둘, 셋으로 늘어나면 큰 손주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방으로 잠자리를 옮겨야 했던 것도 조손의 정을 두터이 하는 원인이었다. 그
런데 오늘날의 핵가족제도가 그런 조손관계를 완전히 갈라놓은 것이다. 노년의 고독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이런 조손관계를 복원하는 것도 하나의 해결방안이 되지 않겠는가. 이제 새봄이다. 우리사회에 화사하고 따스한 햇살이 포근히 내려 집집마다 행복의 씨앗이 싹트게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는 고독이 아닌 꿈과 희망의 새봄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거제중앙신문  skok@geoj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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