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구리반지이승철 계룡수필 회원

결혼 선물로 구리반지를 보냈다. 6.25 동란 후 전쟁의 상흔이 폐허로 남아 있고, 계속된 가뭄과 장마로 흉년이 들어 먹고 살기가 어려울 때였다.
가뭄으로 타버리고 장마로 녹아버린 산야에는 먹을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UN에서 보내온 구호미 알량미와 밀가루는 오는 도중에 어디로 빠졌는지 민초들이 살고 있는 시골에서는 아무 혜택도 없었다.
하늘도 전쟁이 난 곳에는 벌을 주는지 정치는 도탄과 혼란을 거듭하고 민생고는 날이 갈수록 더해만 갔다. 농민들은 나라야 어디로 가든지 배고픔부터 면하는 것이 제일 큰 소원이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더라도 혼상제례는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내 나이 겨우 스무 살이었지만 결혼을 해야 할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 선친께서는 회갑 전에 며느리를 봐야겠다고 하셨고, 처녀 집에서는 다섯 살 때 나와 약혼을 했기 때문에 처녀 나이 스물 두 살이니 과년 차서 처녀로 늙힐 수 없다며 결혼을 서둘렀다.
당시의 결혼 연령은 처녀는 열일곱부터 이십 세였다. 스물 두 살이면 노처녀라 했다. 일찍이 양가에서 사돈을 맺어 놓았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할 수 없는 당시의 혼례 풍속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도리가 없이 혼사를 치러야 했다.
어려운 시국에 흉년까지 겹쳐 결혼을 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때라 양가에서 찬물 떠놓고 간소하게 예를 치르기로 하고 그 해 초겨울에 결혼 날짜를 잡았다. 아무리 어려워도 절차는 갖추어야하기 때문에 사주단자가 가고 이어서 예물을 처녀 집에 보냈다. 함 속에는 신부가 결혼식 날 입을 예복 감으로 인조 비단 노란색 저고리와 파란색 치마감 한 벌을 넣고, 동동 구리분 한 통과 구리반지 한 개를 넣었다.
그 당시 농촌에서는 잦은 흉년으로 인해 양식이 없어서 초근목피로 겨우 연명을 했다. 금반지 은반지 같은 것은 생각지도 못할 때다. 그래도 격식을 갖추느라 구리반지를 넣었다. 양반의 가문에서 체통도 지킬 줄 모르고 예물을 빈약하게 보냈다며 신부 가족들은 불평이 대단했다고 한다. 반지가 백년가약의 징표라 해서 구리반지를 넣어 보낸 것이다.
요즘 같으면 구리반지를 받은 신부가 그냥 있었겠나. 그래도 처녀는 백년가약의 선물로 만족해하더라고 한다.
신부 집에서 전통혼례로 결혼식을 마친 첫날밤에는 신부(아내) 손가락에 끼어져 있는 구리반지를 본 순간 너무나 부끄러웠다.
아내의 손을 볼 때마다 내가 돈을 벌어서 저 구리반지 대신에 금반지를 꼭 끼워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 직장을 얻어 단칸방에서 신접살림을 시작했다.
큰애와 둘째는 고향에 계시는 어머님께 맡겨 놓고 세 살짜리 딸애만 데리고 왔다. 낯설고 물선 섬마을 생활이 시작되었다.
첫 봉급을 타서 금반지 2돈을 하나 샀다. 구리반지를 끼고 있는 아내 손가락에 대신 끼워줬다. 아내는 구리반지가 정이 들어서 더 좋다고 말을 하면서도 무척 좋아하는 표정이다. 내 몫으로 받은 유산인 논 4백평을 팔아 와서 집을 마련하고, 그 집에서 집사람이 사진관을 경영했다. 어렵게 살면서도 아내는 한 번도 불평을 하거나 괴로워하지 않았다. 재산이 솔솔 불어났다. 사는 재미가 날만 할 때 아내가 불치의 병으로 입원을 하게 됐다. 어떻게 해서라도 살려야 되겠다는 일념으로 좋다는 약과 병원을 찾아 다녔지만 아무 효험이 없었다. 시한부 생명의 아픈 고통을 참으려고 애를 쓰는 아내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너무나 괴로웠다.
늦봄의 긴 해가 서산으로 질 때 출장길에서 돌아오니 마지막 갈 길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를 보는 순간 뭐라고 말을 하는 것 같은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는 여운을 남기고 별빛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괴로울 때나 슬플 때나 동고동락하자던 백년해로의 맹세가 모두 무너져 버렸다. 사십 세의 젊은 나이에 그토록 사랑하던 아들딸과 나를 버리고 가버린 빈 방에는 애절한 여운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얼마나 원통한지 땅을 치고 통곡을 해도 아내는 아무 말이 없다. 영원히 오지 못할 먼 길로 떠났던 것이다. “왜 우릴 버리고 당신만 먼저 갔느냐”며 아내의 손을 잡았다.
그 손에는 금반지 대신에 결혼 선물로 준 구리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거제중앙신문  skok@geojenews.com

<저작권자 © 거제중앙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거제중앙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