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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디서용태 칼럼위원

세상이 점점 거칠게 느껴진다. 이렇게 나쁜 방향으로 변질돼 가는 연유가 필시 존재할 것이다. 그것은 일상에서 정제되고 절제된 언어보다 된소리, 상소리, 저속한 말을 섞은 소리가 힘을 받는 사회 분위기 탓으로 여겨진다.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이다. 아름답고 예쁜 말을 멀리하고 거친 말을 많이 쓰다보면 우리들의 정서는 오랜 가뭄에 말라 버린 논바닥처럼 황량해 지기 마련이다.
말 한 마디가 시초가 되어 큰 싸움으로 번진 어느 부부의 이야기를 예를 들어 보면 쉽게 공감하게 될 줄 안다.
<#사례1> 이 사례의 당사자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업무시간 중에 정말 열심히 일한 덕분으로 잔무도 남기지 않고 홀가분한 기분으로 퇴근해 집으로 돌아 올 수 있었다. 그 날이 월말 이었는데 집에 와서 보니 각종 공과금 납부서가 그대로 널브러져 있다. 대뜸 화부터 내고 말았다. “집에서 뭣한 다고 이걸 내지 않아 가산금 물게 되었잖아!”하면서 아내에게 책임 추궁하듯 버럭 화를 내고 말았던 것이다. 다음은 그 분 아내의 반응이다. “누구는 가만히 앉아 놀고만 있는 줄 알아요.”하며 두 눈을 부릅뜨고 대드는 것이다. 일순간 집안 분위기가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그 이후 일어난 일은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긴다.
사례1과 같은 상황에 직면했을 때, 그 분의 말 한 마디를 살짝 바꿔 보았더니 그 분의 아내가 남편에게 눈썹을 치켜세우며 맞대응 하면서까지 화를 낼 수 없겠다는 결론을 얻게 됐다. “당신, 오늘 많이 바빴던가 보네. 월말인데 공과금 내는 것을 잊은 것 보니”이렇게 부드러운 말을 아내에게 건넸다면 아마도 그 분 아내는  “바쁘기는요, 깜빡했지요, 죄송해요”하며 남편에게 진정으로 미안해하면서 부부애는 더 한층 사랑과 신뢰로 무르익어 가지 않을까 싶다.
<#사례2> 아이들이 학교에서 시험 점수를 가져오면 보통 부모들은 칭찬이나 격려의 말에 인색하기 그지없다. “야 이놈아, 이게 점수라고 받아왔나. 여태 공부는 안하고 무슨 짓 했노. 걱정 된다 걱정 돼, 창피해서 어데 가서 자식 자랑이나 하것나.” 이렇게 아이를 질책하고 나무라면 공부는커녕 가슴 속에 증오심만 가득 심어져 정상적인 인격체로 성장 자체가 불가능 해지는 것이다.
사례2의 경우에 대해서도 그 부모님의 말을 살짝 바꿔 보았다. “우와, 우리 아들(딸) 이 번 달에 시험 잘 봤네. 한 등 올랐잖아(한 등 밖에 안 내렸잖아, 또는 꼴등은 아니네). 다음 달에는 한 등 더 올라가는 거다. 우리 아들(딸) 고생 많았다.” 그러면서 어깨를 토닥여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면 아이들의 마음 속 깊이 용기와 너그러움과 사랑이 무럭무럭 자라지 않을까. 실제 이 대화법은 박목월 선생의 아들인 박동규 박사의 회고록에서 그 분의 어머니께서 하신 자식 사랑법이기도 하다.
<#사례3> 조선시대 황희 정승은 청렴을 몸소 실천해 만인의 귀감이 된 인물이다. 황희 정승과 소에 얽힌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황희 정승이 어느 날 시골길을 가다가 두 마리 소를 몰고 일하는 농부를 만났다. 황희 정승은 농부에게 “그 두 마리 소 가운데 검은 소가 일을 잘합니까, 누런 소가 일을 잘합니까?”하고 물었다. 그러나 농부는 침묵을 지켰다. 황희가 몇 번씩 물었지만 마찬가지였다. 황희는 불쾌한 마음이었으나 그냥 지나쳤다. 한참 가는데 그 농부가 뒤 쫓아와 말했다. “선비양반, 아까는 죄송했습니다. 제가 왜 그때 말하지 않았느냐 하면, 아무리 짐승이지만 주인이 누구보다 누가 더 일 잘한다고 해보십시오.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그래서 침묵을 지켰습니다. 사실은 검은 소가 일을 더 잘합니다. 누런 소는 꾀를 좀 부려요.”이 말에 황희는 크게 깨닫고 그때부터 아랫사람들을 대할 때 함부로 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사례에서 우리는 소중한 깨달음을 갖게 된다. 사례1처럼 순화된 말 한 마디를 직장에서나 가정에서나, 일상대화에서 활용해 보면 어떨까 싶다. 말로 인한 구설도 일어나지 않겠지만 너도 나도 말 한 마디로 상처 받아 불면의 밤을 보내고 식욕마저 잃어버리는 는 일은 없을 줄 안다.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에서 오너 가족들의 독설로 인해 상처받은 종사자들의 절규를 보면서 ‘갑질’이라는 우리사회의 고질병은 언어의 순화로부터 고쳐줘야겠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끝으로 필자가 즐겨 암송하는 ‘말 한 마디’라는 시 한수를 올리면서 거친 황야에 단비가 됐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본다.

말 한 마디(작자 모름)

부주의한 말 한마디가 불씨의 한 마디가 되고, 잔인한 말 한마디가  삶을 파괴 합니다.
쓰디쓴 말 한마디가 증오의 씨를 뿌리고, 무례한 말 한마디가 사랑의 불을 끕니다.
은혜로운 말 한마디가 길을 펑탄케 하고, 즐거운 말 한마디가 하루를 빛나게 합니다.
때에 맞는 말 한마디가 긴장을 풀어주고, 사랑의 말 한마디가 축복을 줍니다.

거제중앙신문  skok@geoj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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