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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행복하게 살아왔다옥미조 순리치유학연구소 소장

 한국 최초의 콘택트렌즈를 발명한 안과의사였던 공병우 박사는 6.25전쟁 중 그를 구원해 준 것은 공병우 타자지기였다고 하는 글을 읽었다.

그는 전쟁 중 북괴군에 잡혀있는 동안 공병우 타자기를 고안해 내는 설계로 시간을 보내던 중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이후 그는 안과의사로 번 모든 돈을 공병우 타자기에 쏟아 부었다. 전심전력으로 타자기를 개발하면서 한글의 문화창달에 일생을 바치는 한국 제일의 고집쟁이라고 소문도 나게 됐다. 그러나 그런 고집은 오직 자신의 유익을 위해 한 일이 아니기 때문에 가치 있고 더욱 돋보이는 것이다. 

그가 맹인용 타자기와 워드프로세서, 한글영어겸용 타자기를 개발한 것을 아는 사람이 많을지 모르지만 그가 누도검사법을 세계 최초로 발견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공병우 누도검사법이란 눈물은 누선에서 나와 눈알을 적시고 콧속으로 흘러 들어간다. 눈에서 콧속으로 흘러들어가는 눈물길이 있는데, 이 눈물길이 막히면 마치 하수도가 막히듯이 눈물이 눈 밖으로 흘러나온다. 공 박사는 이 물길을 통해 눈물이 흘러가는지, 잘 흘러가지 않는지를 발견했다. 여기에서 끝나지 않고 막힌 눈물길에 비닐관을 꽂아 눈물길을 만들어 눈물이 콧속으로 잘 흘러가게 했다. 이런 공병우 누도검사법이 학회에 발표되고 학명을 지은 해가 일제 때인 1941년이라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의 권위 있는 안광의사로 많은 돈을 벌었는데 그 돈을 타자기 개발에 투자해 한영겸용 타자기의 발명자가 됐다. 그의 자서전 ‘나는 내 식대로 살아왔다’의 결론에서 자신의 생애를 마감하기에 앞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다.

공 박사는 자기의 죽음까지도 아름답게 하려고 유서를 미리 써넣고 있었다. 옳고 좋은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그의 유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생명이 위독할 때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고 의사의 지시에만 따를 것 △죽은 뒤 아무에게라도 알리지 말고 1개월 뒤 사망사실을 알릴 것 △신체 장기 중 환자에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환자 치료에 사용하고, 나머지 시체는 병리학 또는 해부학 교실에서 사용하도록 할 것 △유형무형의 재산은 모두 신체장애자, 앞 못 보는 장님의 복지에 사용할 것.

사람은 누구나 나이가 들면 죽기 마련이다. 그러나 어떻게 죽는가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죽을 날자와 시간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죽음에 대해 미리 유언을 써 정리해 두는 일은 할 수가 있다. 그 유언대로 부끄럽지 않게 하려고 할 때 그 남은 생애도 아름다워질 수가 있다.

유언을 써 두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노라고 말할 수 있게 하자. 어느 때인가 정리할 것이라고 미뤄서는 안 된다. 그렇게 정리해 놓고 또 다시 고쳐 쓸 수 있는 유언장이 돼야 하겠다. 나는 매일 유언장을 고쳐 쓰고 있다. 이제 고쳐 쓰지 않아도 될 만큼의 완전한 유언장을 쓸 수 있는 날, 완전한 유언장이 쓰이길 바라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 왔다” 이 한마디를 자랑스럽게 할 수 있어야겠다. 그런데 여기에 이 한 구절을 덧붙일 수만 있으면 좋겠다. “나는 내 방식대로 살아왔고, 그리고 행복하다”라고.   

거제중앙신문  skok@geoj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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