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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염용하

우리는 어떤 행동과 말을 하기 전에 선과 악에 대해 생각한다. ‘나의 행동이 과연 선한 것인가? 악한 것인가? 좋은 마음으로 하는 것인가? 악에 받혀서 하는 것인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오직 자신만은 알고 있다. 자신이 하는 행동이 모두 선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선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모습 속에서 반성과 자기 성찰이 따라 다닌다.

‘내가 왜 그렇게 나쁜 말과 행동을 했을까?’라는 후회와 다음에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강한 결심은 인품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계기가 된다.
모든 종교가 존재하는 목적은 악함을 없애고 선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다. 창세기에서도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를 먹은 아담과 이브의 얘기로 인간의 고통과 원죄가 시작된다. 석가세론의 마지막 말씀도 ‘중선봉행, 제악막작(모든 착한 일은 받들어 행하고, 모든 악은 조금이라도 짓지 마라)’이다.

공자께서도 평생 사람들에게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제대로 된 사람의 나아가야 할 길이라는 ‘인’의 사상을 말씀하셨다. 선악이라는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양 갈래의 길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욕을 얻어먹어도 나만 잘 먹고 살면 된다는 이기심이 내 영혼을 좀 먹고 내 몸을 휘감을 때 여러 사람들의 고통과 눈물은 보이지 않는 악하고 추한 사람이 된다.

아무리 큰 이익이 눈앞에 있고 순간적인 자기 과시와 만족감을 주는 기회가 되더라도 눈 하나 깜빡거리지 않고 양심의 소리를 따르는 선한 인간이 많을수록 세상살이가 팍팍해지지 않고 거칠지 않다. 이익에 무덤덤하게 지나갈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다툼과 뾰족한 송곳 같은 아픈 말이 적어질 것이다.

요즘 시대의 유행이 ‘착하면 이용당하고, 짓밟히고, 상처 받는다’는 생각이 널리 퍼져있다. 마음이 곱고 착하다고 하면 ‘요즘 그렇게 착하면 살기 어렵다’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착한 사람이 독하고 악한 사람으로 바뀌어야 세상살이가 수월하다는 인식이 늘어날수록 마음의 고운 결이 무너지고 부서지는 아쉬움의 역사가 쌓여 갈 것이다. 선하게 살아야 좋은 결과가 오고, 악하게 살면 좋지 않는 결과가 온다는 것은 자연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변할 수 없는 진리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라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는 일이다.

지금 당장은 악한 사람이 잘 살고 높은 자리에 올라갈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 미래까지 그렇게 계속될 것인지는 지켜보면 안다.

현재 보이는 모든 것이 다가 아니다. 미래의 일은 어느 누구도 모르는 일이고, 죽을 때까지 그럴 것이라는 단정은 아무도 할 수 없고, 보장돼 있지도 않다. 오직 믿을 것은 선한 일을 많이 해서 하늘의 복 통장에 차곡차곡 저축하는 일이다. 지은 복이 있어야 수확도 넉넉할 것이다. 남의 눈에 눈물 흘리며 자신의 이익을 취한다고 해서 삶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원망과 분노의 에너지가 자기 자신을 감싸게 되면 어려움들이 하나, 둘씩 생기게 된다. ‘자기가 가진 것이 영원히 자기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면 허망한 일들을 하지 않게 된다. 자기 것은 천금같이 여기고 남의 것은 가볍게 생각하고 함부로 대하는 마음은 마음의 에너지가 어둡고 막히는 쪽으로 흐르게 된다. 억지로 쌓아놓은 것은 언젠가는 흘러나가게 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댐의 물도 수위가 높아지면 흘러 보내야 한다.

정치의 목적도 다수의 공공선을 추구하며, 악이 일어나지 않도록 규제하는 일이다. 정치인 자체가 선보다는 악의 에너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면 사리사욕에 물들고, 엉뚱한 규제로 세상을 더욱 더 어렵고 힘들며 혼란에 빠뜨릴 것이다. 개인적 명예욕과 권력욕에 사로잡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높은 곳으로 향하는 모습은 많은 선한 사람들의 마음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일으킨다. 악한 사람이 희생, 겸손, 봉사라는 훌륭한 미덕을 가진 인간으로 잘 포장될 때 세상은 혼탁해지고 사람들의 한숨 소리는 커져갈 것이다.

똑같은 행동에 대해 포장 기술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것이 오늘날의 흔한 현실이다. 그럴듯한 변명과 가식의 얼굴, 여론을 유리하게 만드는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은 결코 유쾌하고 상쾌하게 웃을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선한 사람들이 많아지고 악인이 줄어드는 세상은 살기 편한 태평 세상이다. 악하고 독한 사람들이 선량한 다수를 다치게 하고 아프게 하는 세상은 고통스럽고 불편한 세상이다.

영원히 잘 사는 길은 선한 일과 행동을 많이 하여, 끝까지 행복함과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다. 악한 이의 순간적 영광과 부유함을 부러워하지 말자.
착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 마음속의 악함과 독함을 뽑아내고 선함으로 가득 채워 모두 행복해지자.
 

거제중앙신문  skok@geoj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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