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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自尊心)이성보

  처서(處暑)가 목전인데 탄력 받은 더위는 기세가 꺾일 것 같지 않다. 거기다 자지러지는 매미소리까지 가세하여 더위를 부추긴다. 예년 이맘때에 비가 내리면 이내 꼬리를 내리던 더위였는데, 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걸 보면 절기가 어찌될 것인지 안할 걱정도 하게 된다.

말복을 무사하게 넘긴 삼순이에게 모처럼 먹게 된 닭백숙 찌꺼기를 주었더니 삽시간에 먹어 치웠다. ‘삼순이’는 기르고 있는 잡종 진돗개 이름이다. 처음엔 ‘해피’라 불렀는데 너무 못생겨 이름이 아깝다는 성화에 ‘삼순이’로 개명되었다. 강아지 값도 턱없이 비싸다고 눈총을 받아 똥개로 취급되어 끼니를 거르기 예사였다. 그런 삼순이가 몇 달이 지나자 면모를 일신했다. 반지르르한 털빛에 귀태가 역력하여 잘생겼느니, 늠름하다느니, 어느 새 보는 이마다 찬사가 이어졌다.

나는 삼순이의 겉모양보다 자존심을 높게 친다. 이놈은 아무리 배가 고파도 밥그릇에 먹이를 쏟아 부으면 곧장 먹지 않는다. 주인이 등을 돌리고 몇 발자국을 옮긴 후에야 비로소 밥그릇에 입을 댄다. 언제나 그랬다. 이를 두고 나는 삼순이의 자존심이라 여기고 있다. 개에게 무슨 자존심이냐고 할는지 모르나 결코 가볍게 볼 일은 아니라 믿는다.

‘시 가운데 그림이 있고 그림 가운데도 시가 있다’는 옛말은 대가가 그런 난화에서 생명이 영동(靈動)하고 있음을 느낀다는 뜻이겠지만 난은 그 자체가 시요, 그림이요, 예술품이란 것은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아무 난이나 예술품이 될 수는 없다. 예술품으로 길러내어야 비로소 예술품이 되는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 조각가이다. ‘다윗상’과 ‘시스티나 성당 천장벽화’로 널리 알려진 거장이다. 그가 활약했던 500년 전 예술가의 지위는 그야말로 보잘 것 없었다. 화가들은 거의 간판장이로, 조각가는 문틀이나 촛대장식 따위를 만들면서 생계를 꾸렸다. 말이 좋아 예술가지, 도축업자나 제빵업자보다 나을 것이 없는 신분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자존심만은 대단했다. 그들은 새로운 시대를 이끈다는 자부심으로 창작의 자유를 가로막는 어떤 권력과도 타협하지 않았다. 일단 붓이나 끌을 들면 누구도 그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주문자와의 갈등이 잦았고, 특히 거장들은 스캔들이 끊일 날이 없었다.

그 가운데 미켈란젤로의 막무가내 옹고집은 교황도 고개를 내저을 만큼 상상을 불허하는 정도였다. 미켈란젤로는 종교 주제의 그림이나 조각에서 천사의 날개를 그리지 않는 것으로 악명 높았다. 그의 붓 다른 솜씨라면 깃털 달린 날개 몇 짝쯤이야 식은 죽 먹기였을 텐데 한사코 날개를 떼고 그렸다. 돈과 권세를 쥔 주문자들에게 보인 극단적인 행동들은 그들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함이었으니, 그들의 장인정신은 직업에 대한 자부심으로 무장되어 한 시대를 풍미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산수화라 일컬어지고 있는 ‘몽유도원도(夢遊桃原圖)’는 안견(安堅)의 그림이다. 세종대왕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安平大君)이 박팽년(朴彭年)과 함께 도원을 몽유한 후 안견에게 꿈에 본 바를 설명하여 그리게 한 것으로, 1477년 4월20일에 착수하여 3일 만인 23일에 완성을 본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안평대군의 발문을 비롯하여 신숙주, 이개, 정인지, 박팽년, 서거정, 성삼문 등 21명 당대 고사(高士)들의 시가 각기 자필로 적혀있어 시(時)·서(書)·화(畵) 삼절을 이룰 뿐만 아니라 하나의 기념비적인 성격을 띠고 있는 산수화이다. 신기하게도 몽유도원도는 중국의 장가계(張家界) 모습과 너무나 닮았다고 한다. 중국 호남성 양자강 지류인 예수(禮水)변에 위치한 장가계는 1992년 유네스코가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하였다. 미니어처한 장가계를 만들기 위해 보낸 세월이 십 년이다. 그 준비과정까지 합한다면 35년이다. 이를테면 안견이 3일 만에 그렸다는 몽유도원도의 도원을 연출하기 위해 오랜 세월을 보낸 셈이다. 오기에다 자존심을 걸고 말이다.

근자에 들어 국격(國格)이란 말이 매스컴에 자주 등장한다. 국격은 나라의 품격을 말하는 것 같은데, 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사람마다 일찍이 난의 품성을 익혔다면 굳이 국격 운운하지 않아도 되련만, 매스컴에서 떠든다고 높아질 일은 아니지 싶다.
청나라 화가 정섭은 나의 자존심을 보여주는 시를 남겼다.

봄비와 봄바람에 고운 얼굴 씻고서
살던 곳 떠나 인간 세계로 왔건만,
오늘까지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다면
화분을 깨버리고 다시 산으로 돌아가리라.

난의 자존심이 예사롭지 않다. 난이 이럴 진데 하물며 애란가에 있어서랴. 난을 가꾸는 것은 자연을 배우고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는 일이며,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행위다. 따라서 애란인은 예술가이며, 그것도 겸손한 예술가이다. 돈 때문에 난을 할 것이 아니라 예술가로서 난을 하여야 하리라. 그것은 애란인의 자존을 지키는 일이라 믿는다.

 

거제중앙신문  skok@geoj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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