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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마을 지킴이 허경식 이장, 감투 욕심 아닌 성실과 겸손으로 일궈온 지난 세월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강산이 3번 변하고도 남은 33년간 이장직을 하고 있습니다.”

‘섬 속의 섬’ 황덕도. 황덕도는 하청면 칠천도 북동쪽 300m 해상에 딸린 면적 0.18㎢, 해안선 길이 3km의 작은 섬이다. 갈치와 대구가 많이 잡히는 황금어장이자 1930년대 경남권 전진 어업기지로 명성을 떨쳤던 이곳 황덕마을의 이장을 맡고 있는 허경식(77) 이장은 전국 각지를 돌아다니며 뱃일을 하다가 고향인 황덕마을에서 얼떨결에 이장직을 맡은 게 그만 30년이 넘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현재 거제지역 360여명의 이장 중 가장 장수한 이장으로 꼽히는 허 이장은 1986년 마흔넷의 나이로 마을의 이장이 됐고, 그 후 한 번도 거르지 않고 내리 33년째 이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허 이장은 “집안의 생계를 위해 어릴 적부터 아버지를 따라 뱃일에 나섰고, 20대 초반 진해에서 멸치잡이 배에서 일을 하며 10년을 보냈다”며 “선주가 결석하지 않고 성실하게 일하는 선원에게 종종 광목천을 선물로 주곤 했는데, 제가 자주 받곤 했다. 지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저를 이장으로 추천한 마을 주민이 선주의 동생이었고, 당시 성실한 제 모습을 보고 이장으로 추천하지 않았나 싶다”고 회상했다. 

30년 넘게 이장을 해온 그는 마을의 대소사와 주민들의 크고 작은 일들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훤히 꿰고 있다. 허 이장은 마을의 민원 해결뿐 아니라 매주 마을 어르신의 자택을 직접 방문해 문안인사를 드리며 말동무가 되주는 일부터 마을회관 TV 리모컨 건전지를 교체하거나 땅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줍는 사소한 일까지 세심하게 챙기고 있다. 

이렇듯 허 이장의 ‘이장’ 장수 기록은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 아니다. 마을주민의 화합을 중시하면서 언제나 겸손한 자세와 성실함, 마을과 관련된 일이라면 작은 것 하나라도 소홀히 여기지 않는 마음가짐에 마을주민들이 무한 신뢰를 보냈기 때문에 가능하게 된 것이다.

주민들은 “오랫동안 이장을 맡기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황덕도에서 나고 자랐다는 주민 김태은(80)씨는 “허 이장이 제일 처음 이장을 맡게 된 시점부터 30년이 넘게 옆에서 지켜봐왔다”며 “누구든 한 직책을 긴 시간 동안 맡다 보면 나태해지거나 부정한 행위를 저지르기 마련인데, 서 이장은 늘 한 결 같은 모습으로 오직 마을을 위해서만 봉사해왔다”고 칭찬했다.

또 다른 주민 이명재(76)씨는 “다른 마을 이장들은 본인이 이장이라고 주민들과 상의도 없이 마음대로 마을일을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있다”며 “허 이장은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마을 주민들을 모아 의견을 듣고, 합리적으로 진행한다. 또 항상 궂은일에 앞장서서 솔선수범하는 훌륭한 이장”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주변의 칭찬과 달리 초창기에는 이장 활동이 순탄하지 만은 않았다고 허 이장은 털어놨다.

그는 “당시에는 비교적 어린 나이대의 이장이었다. 주변에서도 ‘이장을 잘 해낼 수 있겠나’라는 시선이 대다수였다”면서 “그러나 착실하게 솔선수범하는 자세로 임하면 언젠가 주민들로부터 신뢰받는 이장이 될 거라는 다짐을 늘 가슴에 새겨 두고 지금까지 이장직을 수행해왔다”고 말했다.

또 “마을 주민 대부분이 김씨, 이씨, 정씨 성을 갖고 있었는데, 당시는 마을 내에서 성씨에 따라 힘이 갈리기도 했다”며 “마을에 허씨는 저 하나였던지라 걱정도 많았는데, 오히려 혼자인 탓에 어느 한쪽 편에 서서 일을 하지 않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다보니 마을 주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었다”고 말했다.  

허 이장은 그동안 숱하게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단연2015년 연륙교 설치와 그보다 앞선 1999년 상수도 연결이라고 말한다.

허 이장은 “다리가 생기기 전까지는 응급환자가 생기거나 화재 발생이 늘 염려되는 부분이었다. 배가 있다고 하지만 늦은 밤 시간에는 위험한 경우가 많아 늘 노심초사했었다”며 “행정에서 많은 노력해줬고, 주민들도 힘을 보태 염원하던 연륙교를 건설했다. 황덕도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지 300년 만에 놓인 다리다. 마을 주민 모두에게 정말 뿌듯한 순간이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다리가 생기기 전까지는 마을에 상수도 시설이 없던 터라 여름철에 가물어 물이 끊기거나 비가 오지 않는 겨울철에는 마실 물조차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황덕도에는 물이 귀했다”며 “마을 주민들이 밤새 돌아가며 우물에서 물을 받아 사용하거나, 배를 타고 나가 물을 퍼와 사용할 정도로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세탁이나 빨래 역시 육지로 나가 인근의 대곡마을에서 하고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몇 년간 주민들과 함께 시에 건의한 끝에 상수도 연결이 성사됐다. 지금은 종종 주민들끼리 모여 물 때문에 고생했던 당시를 떠올리면서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고 웃어보였다.

허 이장은 길고 길었던 이장생활의 끝을 앞두고 있다. 내년이면 이장으로서 임기가 종료된다. 그는 “늘 그만두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회사원도 매일 출근하던 직장을 어느 날 그만두게 되면 처음은 후련하지만 곧 미련이 남기 마련이다”며 “30년이 넘게 이장직을 이어온 만큼 조금은 미련이 남을 것 같다. 그런 만큼 남은 임기동안 마을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고 웃어보였다.

하지만 허 이장은 이장직을 내려놓더라도 지금처럼 마을을 위해 봉사하는 자세로 살 것을 다짐했다. 그는 “이장 생활만 끝날 뿐이지 마을과 주민들을 향한 내 마음에는 변함이 없다”며 “마을의 한 주민으로 돌아가 부담감을 조금은 내려놓고 제 위치에서 마을을 위해 할 수 있는 봉사들을 하고 지내려 한다”고 말했다. 

허 이장은 마지막으로 “이장은 봉사할 마음의 자세가 준비된 사람만이 해야 한다. 지역을 지키고 마을의 전통을 계승·발전시킬 수 있는 이장이 필요하다”며 “이장들 스스로 이장의 질을 떨어뜨리는 것을 볼 때도 가끔 있는데, 주민의 의견을 최우선으로 하는 이장, 감투 욕심보다는 진정한 지역의 일꾼이 될 수 있는 이장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강성용 기자  skok@geoj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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