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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에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실로암 ‘만남의 밤’, 지난달 29일 열려
공연 하나 하나마다 환호와 박수 계속
하모니카·색소폰 연주 등이 무대 장식
힘찬 태권도 공연에 분위기 뜨거워져
가슴 뭉클한 감동으로 서로에게 찬사

어둠이 짙게 깔린 오르막 골목을 타고 오르자 귓가에는 희미하게 사람들의 왁자지껄한 웃음소리와 들뜬 목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피해 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 곳에서는 작은 키의 한 남자아이가 “환영합니다”라는 인사와 함께 밝은 미소로 손님들을 맞았다. 

지난달 29일 저녁 실로암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만남의 밤’ 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는 실로암 공동생활가정(이하 실로암)과 ‘주바라기 장애인 주간보호시설(이하 주바라기) 가족들이 1년 동안 정성들여 만든 수공예 작품을 소개하고 음악 공연을 통한 화합의 장으로 지난 2002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

실로암과 주바라기는 가족과 떨어져 자립 생활이 힘들거나, 부모의 사정으로 낮 시간 돌봄이 필요한 장애인들을 돌보는 연초면 소재 장애인 복지시설이다. 실로암은 장애인이 편견의 벽을 넘어 비장애인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꿈꾸며 지난 1999년 고현동에서 개원해 2001년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았다. 주바라기 또한 2007년 같은 건물에 장애인주간보호시설로 인가를 받았다.

이날 강당에 모여 앉아 공연 순서를 살피던 관객들의 눈길은 저녁 7시 행사의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의 구호와 함께 무대를 가린 채 쳐진 빨간 커튼으로 향했다. 한 아이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으며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빨간 커튼이 걷히자 환호와 박수가 강당을 가득 채웠다. 행사의 첫 무대는 고신대학교 출신 ‘레이비앙상블’의 연주가 장식했다. 첼로의 묵직한 저음과 함께 시작된 연주는 이내 감미로운 바이올린과 피아노 선율이 조화를 이루며 강당을 가득 채웠다. 세 악기의 낭만적인 하모니는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익숙한 음악이 흘러나올 때는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지그시 눈을 감고 음악에 심취하는 모습도 보였다.

다섯 곡의 공연이 끝나자 객석에서는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목청 높이 ‘브라보’를 외치는 소리도 나왔다. 조금은 긴장한 채 연주를 마친 단원들의 얼굴에도 환한 미소가 돌았다. 이상미 단장은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단원들과 함께 열심히 노력하고 준비했다. 다들 너무 좋아해주셔서 감사드린다”며 “다음주 떠나는 미국 공연에 앞서 큰 힘을 받고 간다”고 말했다.

분위기가 무르익고 하모니카 연주를 위해 무대에 오른 최희준씨는 노력과 끈기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드는 뭉클한 발언으로 눈길을 끌었다. 무대가 시작되기 전 할 말이 있다며 마이크를 잡은 최씨는 “하모니카 연주는 호흡이 길어야만 무리 없이 해낼 수 있다. 오늘 이 무대를 위해 1년 동안 연습에 매진했다”며 “몸이 불편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못할 것이 없다는 걸 보여드리겠다”고 말해 관객들의 응원을 이끌었다.

공연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오는 이들에게 다가선 몇몇 관객은 일반인들의 하모니카 연주 못지않았다며 기분 좋은 찬사를 보냈다. 행사 사회자 또한 “얼마나 많은 시간을 연습으로 보내왔을지 오늘 공연에서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며 “다른 행사에 초청돼 공연을 펼친다고 들었는데 자주 들을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후 크리스마스 캐롤에 맞춰 모두를 신명나게 만든 댄스공연, 색소폰 연주, 밀양 장애인 공동체인 ‘아름다운 마을’의 노래 및 기타연주가 이어졌다.

마지막 순서를 위해 흰색 도복을 맞춰 입은 7명의 남성 실로암·주바라기 가족이 무대로 올랐다. 태권도 시범 공연을 준비한 이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지역민인 김정렬씨의 재능기부로 시작된 태권도와의 만남은 어느덧 시간이 흘러 5년째에 접어들었다. 몸이 불편했던 이들에게 큰 도전이었던 태권도 수업은 이제 모두가 손꼽아 기다리는 시간이 됐다고 한다.

이날 공연에서도 태권도를 통해 찾은 활기와 자신감이 내지르는 주먹과 발차기 동작 하나하나에 묻어 나왔다. 자세는 조금 서투르지만 태권도를 향한 열정은 비장애인 못지않았다. 우렁찬 기합소리에 강당의 분위기는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고, 관객들도 열띤 함성으로 시범단의 무대에 화답했다. 태권도 동작을 따라하던 어린 관객들은 연신 최고라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공연을 마친 한 단원은 “몸이 많이 불편했는데 태권도를 배우면서 너무 건강해졌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며 소감을 전해 뭉클함을 전하기도 했다.

행사의 피날레는 가수 해바라기의 노래 ‘사랑으로’가 장식했다. 실로암·주바라기 가족들과 관객 모두가 노래를 합창했다. 박자와 음정을 틀리거나 서툴기도 했지만 한 구절 한 구절 힘주어 부른 이들의 맑은 목소리는 모두의 가슴에 떨리는 감동으로 파고들었다. 합창이 끝나자 강당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가 서로에게 뜨거운 인사를 전했다.

서은경 실로암 전도사는 “실로암에 이르는 여정은 말로 다할 수 없는 역경과 고난이 있었고 따뜻한 사랑의 손길이 있었다. 3년 전부터 장애인들이 사회적 약자로서의 수혜자가 아니라 사회에 기여하는 일원이 되는 소중한 자리를 마련하기 시작했다”며 “올해도 가족들이 정성을 다해 행사를 준비했고 이 사랑이 경기침체로 힘들어하는 거제시민에게 마음에 위로가 되었으면 한다”고 인사를 전했다.

이날 후원금을 전달하고 공연을 관람한 김형곤씨는 “무대 하나하나가 너무 즐겁고 신나는 시간이었다”며 “오늘 행사를 통해 장애인들도 일반 사람들과 똑같은 한 사람으로서 모두 사랑받고 존중받아야 할 존재라는 인식이 퍼져나갔으면 좋겠다”고 바람을 전했다.   
실로암·주바라기 가족들이 1년 동안 정성들여 만든 수공예 작품 전시회도 함께 마련됐던 이날, 깊어가는 실로암의 가을밤은 그렇게 사랑으로 물들어 갔다.

강성용 기자  skok@geoj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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