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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아는 사람들끼리의 문화칼럼위원 옥형길

어느 외국인이 말했다. ‘한국은 아는 사람들끼리의 문화’라고. 제대로 들여다 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학연, 지연, 혈연 등 어떤 명분으로든 연줄을 찾아 끼리끼리 뭉쳐서 서로 돕고 정을 나누며 산다. 그래서 아는 사람이 많아야 하고 그들과 뭉쳐야 한다. 아는 사람이 많으면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고 마음도 든든한 바가 없지 않다. 아는 사람들 모두가 나를 도와주는 내 편이라는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사방에 연줄을 달고 사는 사람을 일러 발이 넓은 사람이라고 한다.

추운 날씨에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듯이 아는 사람이 없으면 주변이 허전하다 못해 외로움을 느끼게 되고 외톨이라는 고독에 빠지게 된다. 물론 ‘제팔 제 흔들고 내팔 내흔들고 살겠다’는 외통수야 어쩔 수 없겠지만 아는 사이가 되어야 서로의 마음이 열리고 그런 후에 대화가 있고 서로 배려하게 되고 서로 돕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과는 말도 섞지 않는 민족이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항상 근엄하다.

이런 아는 사람끼리의 문화는 해외교민들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교민들은 타국에서 여러 민족과 어울려 살면서도 우리 교민들끼리 여러 형태의 모임을 갖고 있었다. 하와이 호놀룰루의 교민사회에도 트래킹모임이 두 개가 있다. 토요산악회와 일요산악회라고 했다. 주말이면 산악회 별로 20~30명의 회원들이 함께 등산을 하며 삶을 즐긴다.

그리고 그들은 산등성이의 펑퍼짐한 곳에 자리를 잡고 둘러앉아 각자 싸 가지고 온 도시락을 펼쳐놓고 서로 나누며 먹는다. 우리나라의 주말 산악회와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하기야 아는 사람들끼리라는 우리민족 문화의 DNA가 어디 갔겠는가. 교민사회에서는 이런 부분이 더욱 절실할 것 같기도 하다. 타국에서 여러 민족과 어울려 살아가려면 우리 민족끼리 화합하고 협력해 서로 돕고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반면에 서구 여러 나라의 사람들은 대부분 혼자 아니면 부부끼리 여행하고 트래킹을 한다. 우리가 아닌 나 중심의 삶이다. 그들은 혼자서 길을 가다가 누군가를 만나면 거리낌 없이 말을 건네고 대화를 한다. 그러다 가는 방향이 같으면 같이 걷기도 하고, 가는 방향이 다르면 헤어져 제 갈 길을 간다. 그들은 둘러 앉아 도시락을 나눠 먹거나 하지 않는다. 배가 고프다 싶으면 빵조각을 씹으면서 설렁설렁 걷는다. 그들은 조직화 된 잘 아는 사람들 대신에 아무나 알며 사는 것이다. 그리고 필요하면 아무나와 도움을 주고받지만 우리는 잘 아는 사이가 아니면 모르는 척 그냥 지나쳐 버린다. 우리는 아무 하고나 말을 걸고 대화를 이끌려는 사람을 가리켜 넉살좋은 사람이라거나 심한 경우는 조금 모자라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또 서구의 사람들은 산행을 하며 산천의 풍광을 감상하고 작은 야생화 하나라도 살펴보며 카메라에 담고 동행자가 있으면 그에 대한 서로의 지식을 나누기도 하며 천천히 걸으며 즐긴다. 그러나 우리의 산행은 병사들의 행군처럼 줄을 지어 앞에 선 사람의 발뒤꿈치만 보고 자박자박 걷는다. 리더는 항상 대오를 이탈하지 말고 함께 할 것을 독려한다. 우리의 산행 결과는 무엇을 보고, 느끼고, 즐겼느냐가 아니라 기록이다. 몇 시간 몇 분 만에 올라갔다 내려 왔느냐다. 그리고 낙오 없이 함께 하였느냐다.
여기서 어떤 민족이 우수한 민족이며 어떤 삶이 올바른 삶인가를 가릴 바는 아니다. 저마다의 환경과 관습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을 지키며 사는 것이 민족의 전통이며 장점일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내가 저를 언제 봤다고” 이런 말을 많이 듣는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마음을 줄 수 없고 도움도 줄 수 없다는 뜻이다. 무슨 부탁을 좀 하다가도 “나 그 사람 잘 몰라” 이러면 이야기는 끝이다. 그래서 아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는 사람이 많으려면 여러 가지 관계에 의한 모임에 참여해야 한다. 

모임 만드는 데는 우리 모두가 선수들이다. 사람을 조직화 시켜 이리저리 얽어매는 기술자들인 것이다. 그래서 정치인들이 많은 나라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학연(學緣) 따라 동창회(同窓會), 학위 따라 석우회(碩友會)·박우회(博友會), 지연(地緣) 따라 향인회(鄕人會), 혈연(血緣) 따라 종친회(宗親會), 나이 따라 갑계(甲稧), 재능이나 취미 따라 동호회(同好會). 함께 외국 여행한 인연으로 친목회 하나 만들고, 한 회사의 인사부서에 근무한 인연으로 인우회(人友會), 감사부서에 근무한 인연으로 감우회(監友會), 녹지부서에 근무한 인연으로 녹우회(綠友會), 덕수궁 옆 빌딩에서 근무한 인연으로 덕수회(德壽會), 도봉산 자락에서 이웃에 살았던 인연으로 도봉산회(道峯山會), 술자리 한 번 어울렸던 인연으로 주우회(酒友會), 시장에서 장사하면 시장상인회, 길거리에서 장사하면 노점상 연합회. 아무튼 끼리끼리 뭉쳐야 할 인연도 많고 이름도 참 잘 끌어다 붙인다. 이렇게 스스로를 조직화 시키는 것은 스스로의 존재감 유지는 물론 대외적인 자기 방어에도 집단의 힘을 얻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아는 사람들끼리의 문화가 한껏 꽃을 피우는 때가 바로 송년의 계절이다. 그리고 지금 그 송년의 계절이 됐다. 모든 모임에서는 일제히 송년회가 열린다. 모두들 서로 반갑다고 손을 잡아 흔들고 야단들이다. 술잔을 부딪치고 또 부딪치며 쌓인 이야기를 쏟아 내느라 왁자지껄하다. 여기저기 걸쳐진 모임이 많다보면 송년회는 11월 하순부터 연말까지 줄을 잇는다. 아무튼 송년회를 해야 한 해가 가는 것이니 나는 오늘 저녁에도 집을 나선다. 새해는 기해년(己亥年)으로 돼지의 해다. 그것도 황금돼지의 해 라고 한다. 옛날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지금은지지(地支)에 황금이라는 수식어가 종종 따라 붙는다.
새해에는 황금돼지의 축복이 모두에게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거제중앙신문  skok@geoj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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