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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세 번 구한 巨濟人, 그 저력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말단 공무원으로 시작해 교육부 차관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하는 공무원’, ‘발 치수 320㎜ 교육계 마당발’, ‘이기우가 못하면 정말 못하는 것’ 등등. 이기우 인천재능대학교 총장을 수식하는 수많은 닉네임 가운데 몇 가지다. 이 총장의 닉네임 속에는 지나온 삶의 궤적과 현재의 능력치가 버무려져 있다. 1948년 연초면 다공리에서 태어난 이 총장은 연초초등학교, 연초중학교를 거쳐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 따라 치른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9급 서기보로 공무원이 됐다. 이후 교육부 총무과장, 공보관, 지방교육행정국장, 교육환경개선국장, 교육자치지원국장, 기획관리실장과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 국무총리 비서실장을 거쳐 교육부 차관을 지냈다. 현재는 대학사회 최초로 2006년부터 13년째 인천재능대 총장으로 재임 중이며, 136개 전문대학을 대표하는 협의체인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최초로 4번째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독보적인 능력으로 공무원 성공신화를 쓴 이 총장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본다.    <편집자 주>

 


Q. 어린 시절 고향에 대한 추억이 있다면
중학교를 졸업하고 부산으로 나와 살았지만, 태를 묻은 고향 거제도에서의 유년시절은 뚜렷이 기억납니다. 특히 그 시절을 떠올리면 늘 배가 고팠던 기억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그 시절 어렵지 않은 집이 얼마나 있었을까 싶지만, 저희 집은 유독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쌀밥을 원 없이 먹어 보는 게 소원이던 시절. 가장 기다려지는 날이 제삿날이었습니다. 제삿날에는 그래도 쌀밥과 기름진 음식이 제사상에 올라가고 생선에 전이라도 이웃들과 나누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늘 어느 집에 제사가 있는지 촉각을 곤두세웠고, “느그 집 기제가 언제드노?”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절 부모님이 해주셨던 음식들이 무척 그립습니다.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어머니는 아들 영양보충을 위해 가끔 대접에 달걀을 하나 깨서 풀고 거기다 참기름을 넣어 휘휘 저어 주셨는데 정말 별미 중의 별미였습니다. 달걀과 참기름이 뒤섞인 고소하고 부드러운 맛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는 체격이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힘이 장사셨고, 애주가로 술 좋아하는 친구 분들과 흥겹게 자주 어울리셨지만 자식들에게는 애정 어린 표현을 하시는 분은 아니었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유일하게 제게 해주신 음식이 하나 있는데, 결핵성 늑막염으로 거제도 집에 내려와 쉬고 있을 때 결핵에는 개가 좋다고 황구 한 마리를 사가지고 오셔서 한약재를 넣어 푹 고아 주셨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개소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얼핏 잠을 깨어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누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아버지께서 “저 놈의 자식이 내 반만 닮아도 몸이 좋을 건데”하고 저를 두고 넋두리를 하고 계셨습니다. 이전까지는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아버지의 정을 그때 알았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바람이 전해졌는지 어렸을 때는 병약했던 제가 지금은 어디가도 체력만큼은 자신 있다는 이야기를 하게 됐습니다.

Q. 좌우명이나 삶의 철학은 무엇인지
등불로 삼는 좌우명이 몇 개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하루가 인생의 전부다’라는 것입니다. ‘현재의 나’를 방해하는 ‘과거의 나’는 철저히 죽이고,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해서 집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나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세포도 주인인 내가 최상의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더욱 분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삶, 내게 주어진 기회에 정성을 다하는 삶을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니 저에겐 언제나 오늘 하루가 가장 소중합니다. ‘하루살이’라고 할까요. 오늘 이 하루를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간으로 생각하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루를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말은 쉽지만 실천이 어렵습니다.

매일 결심을 새롭게 다져야하고, 자신을 성찰해야 하며, 특히나 감사의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해야 이렇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게 전부는 아닙니다.  ‘하루가 인생의 전부다’라는 말의 무게는 어떤 마음자세로 과거의 나와 단절했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흔들림 없이 연장될 수도 있고, 아니면 아주 손쉽게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지요. 제가 조직생활을 하면서 지치지 않을 수 있었던 비결은 하루를 열심히 산 결과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했는데도 성과가 예상처럼 나오지 않았을 경우, 예전의 나를 빨리 정리하는 방법에도 있었습니다. 필요하다면 예전의 나를 철저히 죽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Q. 총장님을 이끌어준 원동력은
‘스스로 부족한 것이 많은 사람이니 채워가며 살겠다’라는 마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늘 무엇인가 배우려는 자세로 내가 가지지 못한 부분을 가진 사람이라면 연령과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배우며 익히려 노력했습니다. 어느 정도의 경지에 올랐을 때도 그것을 끝이라 여기지 않았는데,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끔 저에게 이렇게 묻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졸 출신인데 행정고시 출신이 가득한 공무원 조직에서 어려운 점 없었느냐고. 아마 이 질문에는 학력이 낮으면 그만큼 능력이 없지 않느냐는 의문과 학력 때문에 차별이 있지는 않았겠느냐 하는 점이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제가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공무원으로 살면서 한 번도 제가 가고 싶어서 간 자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언제나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먼저 있었고, 그 사람들이 저를 데려다 쓰려고 한 결과 제 자리가 만들어졌습니다. 또 그 자리에 가면 저는 늘 그 자리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고시출신보다 승진이 오히려 빨랐고,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현 더불어민주당 대표)로부터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공무원’이라는 닉네임도 얻게 됐습니다. 성실한 자는 준비된 자이고, 준비된 자는 믿음을 얻는다는데, 그 믿음이 쌓여서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Q. 총장님이 바라는 공직자상은
저는 일을 제대로 하는 공직자가 되기 위해 애썼습니다. 오랫동안 쌓인 경력으로 업무에 대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더라도 일단 일을 시작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정성을 들여서 일을 해야만 능률이나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행정과 경영에는 과정이 있기 마련입니다. 주어진 과정과 상황에 어떻게 정성을 들였느냐가 중요한 것이지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마음을 어떻게 담아내느냐에 차이가 있는 겁니다. 공직자는 나라와 국민을 위한 봉사자입니다. 그만큼 보람이 있는 일을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위치를 제대로 파악하고, 자신의 위치에서 눈 돌리지 않고 최선을 다하면 승급은 당연히 따라오는 부상 같은 것이지요. 그저 자신의 자리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한 눈 팔지 않고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Q. 총장님 삶을 언급할 때 자주 삼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삼실(三實)은 진실(眞實), 성실(誠實), 절실(切實)을 뜻합니다. 먼저, 진실은 정직한 마음과 행동이 기본입니다. 생각과 실천의 일치인 것이지요. 저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여기서 그 신뢰의 바탕이 되는 정직, 즉 진정성이 전달되지 않으면 좋은 관계가 유지되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항상 정직하게 진정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 ‘성실’이라는 것은 그야말로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시간이 흐른 뒤에 내가 조금이라도 부족함이 있었다거나 조금 더 힘을 쏟을 걸이라는 생각이 든다면, 이것은 최선을 다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어떤 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는 그 일에 대해 모든 정보와 지식을 다 꿰고 있어야 하는데, 그래야만 최선을 다한 것이 최고의 상태로 발현될 수 있습니다. ‘절실’은 어떤 일을 이루어내고자 할 때에 그 절절함이 상대방의 가슴을 울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무언가 얻고자 하는 사람의 간구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해내야 한다’는 절실함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여 그 마음을 열게 합니다. 보통 어떤 일을 수행하기 위해 상대방을 방문할 때도 세 번 정도에서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섯 번이고, 여섯 번이고, 안 되면 열 번까지 상대방을 찾아야 합니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가 없다’는 것은 괜한 말이 아닙니다. 이때 또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면 그 절절함이 전해지지 않습니다. 항상 자신을 낮추면서 한결같은 마음으로 진정성을 보여줘야 합니다.

Q. 끝으로 거제시민에게 한 말씀 하신다면
거제사람들은 ‘거제가 유사 이래 나라를 세 번 구했다’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의 옥포해전, 한국전쟁 당시 15만 피란민이 전쟁을 견뎠고, IMF 때 거제 조선업이 경제를 회복시킨 것을 일컫는 것이지요. 그런 거제가 지금은 조선업 불황으로 실업률이 증가하고, 가게가 문을 닫고, 사람들이 떠나는 등 지역경제가 붕괴되고 있으나 그것도 끝은 있습니다. 경기변동론에 따르면 경기(景氣)는 장·단기적으로 순환합니다. 굴곡이 있다는 말이지요. 우리는 세계 최초로 철갑선인 거북선을 만들고 최고의 조선기술로 선박 수주량 세계 1위를 석권하던 민족이고 주민입니다.

거제가 그것을 가능하게 했고, 아직도 거제에는 조선업과 관계되는 우수한 기반시설과 기술자가 건재합니다. 조선업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서고 재고용이 이뤄지면 옛 영화는 금방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실제 긴 터널의 끝이 열리는 소식들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옛 영화를 기억하는 시민 모두가 희망의 끈을 놓지 말고 부활의 합창을 힘껏 부르면서 대한민국을 세 번 구한 거제의 저력을 믿었으면 합니다. 그러면 거제의 봄은 곧 오고, 꽃도 곧 필 것입니다. 거제는 저력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제 고향 거제는 우리나라 제2의 섬으로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해금강과 구조라해수욕장 등 풍광이 장관을 이루고, 연중 기후도 온화해 사람이 살기 더 없이 좋아 휴양지와 같은 곳입니다. 관광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지요. 저는 조선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지역경제 구조를 완화하기 위한 대안으로 관광업이 더욱 발전됐으면 좋겠습니다. 경기불황에 따른 조선업 침체가 되풀이 돼도 제 고향 거제가 다시는 지난 몇 년과 같은 어려움을 겪지 않고 조선업과 관광업 쌍두마차로 더욱 풍요롭고 안정적으로 발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거제중앙신문  skok@geoj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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