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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수필/청마(靑馬)의 길을 걷다김정순 수필가

꽃같이 아름다운 산, 산방산을 마주보며 걷는다. 산의 형태과 뫼 산(山)자와 비슷하고 꽃같이 아름답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산방산이 두 팔 벌려 품고 있는 둔덕골 방하마을은 청마(靑馬) 유치환 시인의 태생지다. 누구에게나 태어난 곳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사후(死後) 30년 만에 돌아와 고향 선산에 잠든 청마에게도 그것이 상징하는 의미가 특별했기 때문이 아닐까.

새해 첫 절기인 입춘, 봄이 시작되는 날 청마의 길을 쫓아 방하마을을 찾았다. 하지만 봄을 입에 올리기 무색하게 기온은 낮고 바람은 거칠다. 청마 기념관 주변에 걸린 시화 깃발들이 펄럭펄럭 바람을 탄다. 청마의 <깃발>도 바람을 따라 나부낀다. 시비(詩碑)에 기대 선 청마는 바람 속에 담담하다. 안경너머 눈동자도 흔들림이 없다. 그의 등 뒤로 보이는 생가(生家) 초가지붕도, 담쟁이 넝쿨이 터를 잡은 돌담도 미동이 없다.

마을 보호수인 팽나무를 지나 청마의 길이 시작되는 골목길로 들어선다. 골목길이 유난히 정갈하다. 짧은 골목길을 빠져나오자 그루터기만 남은 들판 사이로 곧게 길이 이어진다. 지난 가을 아름다운 꽃들과 사람들로 왁자하던 들판이 겨울잠에 빠져있다. 씨앗들이 몸을 부풀리는 봄이 시작되면 들판은 다시 끼어나 두런두런 생명의 소리들로 가득 차리라.

산길로 향하는 초입에 청마 시비가 기다리고 있다. 행여 “검정 포대기 같은 까마귀 울음소리”가 들려올까, 잠시 숨을 멎고 귀를 세운다. 까마귀 울음소리 대신 바람소리에 운율을 실은 듯, 억새가 들려주는 시인의 <出生記>가 서걱서걱 귓가에 얹힌다.

얕은 오르막으로 이어지는 산길이 환하다. 바람은 온순해지고 숲에도 마른풀잎 위에도 햇살이 내려앉았다. 청마의 하얀 <치자꽃> 위에도 <낙화>한 동백꽃 위에도 햇살은 살뜰히 스며들어 환하다. 시를 음미하여 가느라 걷는 시간보다 멈춰 선 시간이 더 길다. 누구든 청마의 길에 들면 별반 다르지 않으리라. 걸음걸음마다 만나게 되는 시비 앞에서 한번쯤은 목청을 가다듬게 될 것이다. 더러 사무치는 시구(詩句)에 아득해지기도 하고, 짐짓 발목이 붙잡히기도 하리라.

산바람은 맞춤하고, 얕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번갈아 이어지는 길은 걷기에 더 없이 좋다. 이 길이 가진 특별함이 걸음을 가볍게 만드는 탓이리라. 어떤 시가 기다리고 있을까. 기대를 품은 탓에 걸을수록 발걸음은 빨라진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수록 만남은 더 반가운 법. 빠른 걸음을 애써 긴 보폭으로 속도를 조절한다. 속도를 줄이자 배경이 더 자세히 눈에 들어온다. 뿌리 내린지 몇 해나 됐을까. 키 작은 동백나무들이 산비탈에 가득하다. 겹겹이 입술을 오므린 꽃봉오리가 금방이라도 노랗게 물오른 잇몸을 보이기라도 할까, 자꾸만 눈길이 산비탈로 향한다.

오롯이 청마와 독대하며 걷는 시간이다. 낯익은 시는 반가움으로, 처음 만나는 시는 새로움으로 마음에 담는다. 짐작할 수 없는 행간의 호흡조차도 설레는 마음으로 읽고 또 읽는다. 세상 모든 일은 생각하는 것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 않던가. 익히 알고 있던 것들도 배경을 달리하고 그 배경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보면 전혀 다른 해석이 가능해진다. 해서 나만의 길을 만들기 위해 읽고 걷기를 반복한다.

산모퉁이를 돌아 “가까웁고도 먼 먼 그 <별>”을 지나면 청마묘지로 이어진다. 흉상과 시비 뒤쪽으로 청마묘지가 보인다. 생전에 그토록 소원하던 어머니 곁이다. 재작년과 올 일월에 세상을 떠난 셋째, 둘째 따님도 함께 잠들어 있다. 얼마나 긴 그리움의 시간을 견뎌야 이렇게나마 함께할 수 있을까. 도란도란 나누는 정담처럼 묘지위로 퍼진 햇살이 따뜻하다. 깊고 편안한 잠에 들길 기도하며 청령정으로 걸음을 옮긴다.

청마묘지에서 마주보는 오솔길을 따라 쭉 내려가면 청령정에 닿는다.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바위인 양 자리잡은 시비가 길을 안내한다. 팔각지붕의 아담한 정자가 솔숲 끝에서 모습을 보인다. 둔덕들판과 마을, 바다와 섬들이 그림 같은 풍경으로 들어와 앉았다. 지친 몸을 기대고 잠시 쉬어가게 해주는 쉼터로서 더할 나위 없다.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며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가만히 있어도 좋다. 부러 그렇게 하려들지 않아도 어느 순간, 고요 속에 무념무상으로 앉은 자신을 보게 된다.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야 할 길에 대한 생각은 잠시 잊는다. 마음에 담아 온 청마의 시편들을 가만히 읊조려 보는 것만으로도 청령정에서의 한순간이, 청마의 길 위에서 보낸 시간이 특별한 선물처럼 느껴진다.
 

거제중앙신문  skok@geoj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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