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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설날에 다시 생각하는 孝칼럼위원 옥형길

효(孝)는 인륜(人倫)의 기본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효 문화가 삶의 근간이 되어왔던 나라다. 효의 가르침이 곧 교육이었고 효의 실천이 곧 사회 질서였다. 그러기에 선악사상의 종주국인 중국에서도 우리나라를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 이르지 않았던가. 이렇듯 우리는 효를 최고의 가치로 살아왔다.

병든 시어머니를 살려내기 위해 손가락을 잘라 흐르는 피를 입 안으로 흘려 넣었다는 효부(孝婦)이야기. 남편의 병을 낫게 하려고 허벅지의 살을 베어 먹였다는 열녀(烈女)이야기. 호랑이가 산삼이 있는 곳을 가르쳐 주고, 눈 속에서 죽순이 솟아 나오고, 얼음 속에서 잉어가 튀어나왔다는 효자(孝子)이야기. 이 모두가 지극한 효성에 감동하여 천우신조(天佑神助)한 효 이야기 들이다.

조정에서 정승 판서의 벼슬에 있다가도 부모가 늙고 병들면 벼슬을 내려놓고 고향으로 돌아와 부모를 봉양하고 돌아가시면 무덤가에 초막을 짓고 삼년동안 시묘(侍墓)살이를 하는 것이 우리의 효였다. 임금님께서도 이를 기꺼이 윤허(允許)하고 곡물을 내려 격려 하였다. 이 모두가 조상들의 아름다운 효 이야기가 아닌가. 이처럼 아름다운 우리의 효 문화가 최근 들어서는 부모봉양은커녕 부모의 재산을 탐하여 부모를 위해(危害)하는 패륜(悖倫)을 저지르거나 가족을 폭행하는 가정 폭력으로 하루도 빠지지 않는 매일의 뉴스거리가 되고 있다.
효의 가치를 잊고 효의 가치를 훼손하는 패륜사회가 여기게 달하니 마침내 나라에서도 효를 법으로 강제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2017년 말 「효행장려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효를 법으로 정하여 효를 가르치고 권장하며 효행자를 지원하여 효의환경을 만들어 가는데 국가가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것이니 그 취지는 인정되지만 궁여지책이 아닐 수 없다. 어찌 효를 법으로 강제할 수가 있겠는가.

이 법 제4조에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5년마다「효 장려기본계획」을 세우도록 규정하고, 제5조에는 유치원 초. 중. 고등학교, 영유아 어린이집, 사회복지시설, 평생교육기관, 군, 교도소 등에서 효행 교육을 실시하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규정하여 효행에 대한 교육을 장려하고, 제6조에서는 부모 등 부양가정의 실태조사를 3년마다 실시하며, 제7조에서는 효문화 진흥원을 설치하여 관련 사업과 활동의 지원을 장려하고, 제9조에서는 10월을 효의 달로 정하며, 효행 우수자에 대한 표창. 부모 등의 부양에 대한 지원. 주거시설 공급. 민간단체 등의 지원권장에 대하여는 10조 내지 13조로 규정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헌법을 비롯한 각종 법률이 그 제목만 해도 180페이지가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도 또 새로운 법률이 계속 쏟아져 나온다. 이도 부족하여 지금 국회에 계류 중인 법률 또한 수 백 건에 달한 다고 한다. 법이 많은 것은 오히려 법을 지키기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에 달렸는데 이런 성문법이 아무리 많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인간을 다스리는 법은 ‘효’ 하나면 족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효는 강요할 일이 아니다. 효를 어떻게 법으로 강제할 수 있을 것인가. 효는 어디까지나 윤리 도덕적으로 권장하고 효 이야기를 널리 전파함으로써 이를 본받아 자발적으로 스스로의 마음에서 우러나 실천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 효가 얼마나 몰락하고 세상이 얼마나 피폐하고 흉흉해 졌으면, 가족관계가 얼마나 무너졌으면 효행장려 법이 다 만들어 졌을까. 서글픈 일이다. 이런 효의 몰락 원인은 부모의 재산(유산)문제가 주범으로 지목된다.

자식에게 재산을 안주면 맞아 죽고, 반만 주면 졸려죽고, 다 주고나면 굶어 죽는다니 마침내 부모는 재산상속에 앞서 효도각서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폭력을 앞세운 자식 앞에 그까짓 각서가 무슨 소용이 되겠는가.

맹자의 성선설(性善說)이 아니더라도 인간은 원래 이렇게 사악하지 않았다. 순박한 것이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기에 고조선 시대의 원시사회에서 백성을 다스리기 위한 법은금법8조(禁法八條)로 단 여덟 가지였다. 참으로 단순하다. 단순한 만큼 지키기도 쉬웠을 것이다. 법이 단순하면 내가 이런 행위를 하면 법에 저촉이 된다, 안 된다, 를 쉽게 알 수 있다. 법이 많은 것이 오히려 범법이 무엇인지를 모르게 하는 것이다.

△사람을 죽인 자는 죽이고(생명존중) △남에게 상해를 입힌 자는 곡물로써 배상하고(신체의 안전보호) △남의 물건을 훔친 자는 노비로 삼으며(사유재산 보호)...어쩌면 지금도 이 세 가지만으로도 우리는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수천가지의 법이 모두 이 8조의 금법에서 파생되어 세분화된 것이 아니겠는가.

인간 사회의 근본은 효 하나다. 법이 필요한 것은 효의 실종 때문이 아니겠는가. 성현의 말씀에 어머니는 자식을 낳아 기를 적마다 서 말 서 되의 피를 흘리고 여덟 섬 너 말의 젖을 먹여야 하니 이 은덕은 평생을 두고도 갚을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 곁에 아버지가 있으니 또한 마찬가지다.

효, 법으로 장려한다고 될 일인가. 깨우침이 있어야 하고 이에 마음이 움직여야 실천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내일이 설날이다. 이런 큰 명절을 계기로 마음의 효를 실천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부모의 재산을 욕심내기 보다는 부모의 건강을 욕심내라’는 어느 효 프로그램 진행자의 마감 멘트가 마음에 남는다.

거제중앙신문  skok@geoj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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