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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멈춰버린 시간 속으로수필가 정순애

어둠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었다. 광장에 있는 숲과 나무들까지 모두가 먹빛 같이 검었다. 이곳 어디쯤에 서 있던 초록의 풀빛들도 붉은 꽃잎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흑백의 사진처럼 정지된 것 같았다. 쓸쓸하고 고요함만이 나를 에워싼다.

무거운 침묵만이 내려앉은 이 공간은 우리들의 역사관이다. 6.25전쟁이 일어난 지 올해로 68주년이다. 전쟁을 겪은 어른들이나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에게 필요한 교훈의 장이며 전쟁기록관이다. 여러 종류의 군용기와 함께 각종시설물로 전쟁의 아픔을 재조명하고 있다. 또 많은 포로를 수용했던 이 지역에 재구성된 포로수용소유적관이다.

내 발걸음에 놀랐는지 아침이 오고 있었다. 동이 트면서 허연 기운이 비친다. 이제는 주변이 희번해졌다. 직선을 따라 걷다가 동그라미를 그리며 걷지만 길이 아닌 거대한 주차장이다. 썰물처럼 빠져나간 텅 빈 공간은 날이 밝으면 관람객들의 차량들로 술렁댄다. 사람도 가고 차도 떠난 자리 아침 일찍 산책을 한다. 몇 바퀴를 돌다가 오솔길로 접어든다.

오른쪽으로는 한국전쟁 참전국 국기게양대다. 머나먼 나라에서 평화를 구원하려온 유엔 참전 국가들의 깃발이다. 젊음을 불태운 표적은 슬픔에 젖었는가. 국기도 눈물 같은 이슬에 젖어있다. 우리 동족이 총을 겨누던 전투에서 희생되었다는 것이 부끄럽고 마음아프다. 숲에서 스미는 아침 공기가 싱그럽다. 햇살도 살포시 찾아든다. 꿩도 날아들고 알 굵은 도토리도 이리 저리 뒹굴고 있다. 나무가 주는 신선함은 또 달랐다. 내가 걷는 이 공간이 시민들이 누려야 할 쉼터로만 조성되어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지울수 없는 전쟁의 아픔을 상기시키는 곳이다.

그 곁에는 피난민들이 타고 내려온 큰 배가 재현되고 있다. 메레디스빅토리호다.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1만4천명의 피난민을 태운 기적의 배다. 피난의 행렬은 생사의 기로에 선 인간의 필사적인 모습이 아닐까. 언제나 이곳을 지날 때면 눈 여겨 본다. 모형물로 만들어진 기적의 배 앞에서 청동의 옷을 입은 소녀가 울고 있다. 부모님과 함께 피난길에 나섰다가 그만 손을 놓친것 같았다. 작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고 있었다. 전쟁은 너무나 참혹했다.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꼽는다면 6.25 전쟁이라고 한다. 안타까운 혈전이었다. 아까운 인명이 희생되었지만 전쟁은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 나누어진 것은 남과 북만이 아니었다. 이념마저 나누어져 날을 세우지 않았던가. 같은 동족이 총부리를 겨누고 아직도 휴전상태다. 나는 이곳을 지나칠 때마다 무거운 마음이 든다. 또 피난민이 타고 온 기적의 배를 만나면서 생각에 잠겼다.

내가 태어나기 전이었다. 뭍으로의 길은 오로지 바닷길만 열려있던 시절에 찾아들었던 피난민들이었다. 그들에게는 생명을 건 대장정이었다. 그 기막힌 생사의 운명 앞에서 가족도 해체되고 기약없는 이별을 맞았다. 재앙이 따로 없었다. 어떻게든지 살아남아 다시 만날 그날을 꿈꾸었을까. 강하지 않고서는 견뎌내지 못할 격변의 세월이 시작되었다. 하루아침에 고향을 잃은 실향민이 된 것이다.

지난했던 시절이라 원주민이던 우리들의 삶도 팍팍하기는 마찬기지였다. 그 당시만 해도 모두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또 섬이라는 상황이 육지와는 달랐다. 모든 물자는 바다를 건너야 섬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험한 바닷길은 멀고 멀었을까. 어느것 하나 풍족한 것도 없고 몸과 마음도 황폐한 땅처럼 메말랐다. 아이들 역시 묻는 말도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수식어는 말할 것도 없고 자신의 의사마저 제대로 표현할 수 없었던  시설이었다. 철이 없었던 행동이며 말씨도 거칠고 퉁명스러웠다. 어른들이 피난민이라고 하면 그 단어를 그대로 말했다.

어느 날 이웃에 살던 실향민이 부모님을 찾아와서 하소연 하시던 것을 지켜보았다. 아이들이 자신을 향해 피난민이라고 불렀단다. 철없는 아이들이지만 그분 마음의 상처는 깊었던 것 같았다. 어린애들에게 조차 수모를 당하는 신세가 서럽다며 눈시울을 붉히시던 모습이 잊혀지지를 않는다.

실향민들은 개인적인 특성을 살려 새로운 삶을 개척하는가 하면 작은 공간에 상품을 가득 쟁여놓고 장사를 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들의 강한 생활력은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었다. 매서운 겨울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새벽부터 밤중까지 가게 문을 열어두고 불이 꺼지지 않았다. 나의 옛 기억은 아직도 그 시절에 머물고 있다. 쌀이나 보리 밀가루며 반찬거리등 온갖 생필품을 팔았다. 어린 시절 시장터는 왁자지껄한 이북말씨가 주를 이루었다.

어머니는 자주 심부름을 시키셨다. 흰 옷에 풀을 먹인다고 밀가루를 사오라고 하셨다. 당시 우리 밭에서 수확한 밀은 곱지 않았다. 옷에 풀을 먹여도 옷 자연의 색보다 누랬다. 판매되는 밀가루는 정제되어 희고 고왔다. 그날도 어른들이 부르시던 이름대로 곱단이네 집을 찾았다. 주민들은  그 아주머니를 얼굴이 눈처럼 희고 곱다며 그렇게 불렀다. 얼마나 싹싹한지 들어서기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곱단이 아주머니는 나무로 만든 홉되에 밀가루를 가득 담아 건네주셨다. 손가락에 뭍은 하얀 밀가루를 톡톡 털어내면서 희고 뽀얀 얼굴에 웃음을 가득 머금었다. 그러면서 또 오너라였는데 함참동안 그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아버지께 실향민 친구가 한 분 계셨다. 그분은 이곳에 정착을 하면서 아버지와 돈독한 정을 나누다가 타지로 떠났다고 했다. 간간히 소식을 주고받으면서 아버지는 참 좋아하셨다. 삶은 예측이 없었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삼우제 날이었다. 그때 문밖에서 우체부가 ‘편지’요 하는 소리가 들렸다. 얼른 받아보니 실향민 아저씨께서 아버지 앞으로 보낸 편지였다. 살며시 문을 열고 몸져 누워계시는 어머니께 편지를 읽어드렸다. 두 분의 두터운 친분은 편지내용에도 담겨있었다. 어머니는 위안을 받으셨는지 빨리 소식을 전하라고 하셨다. 모처럼 생기가 도는 어머니 모습에 서둘러 편지를 써서 우체통에 넣었다. 그분 역시 속달우편으로 답장을 보내주셨다. 아버지의 부재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며 애석해하셨다. 늦었지만 어머니라도 뵙고싶다며 무심함을 자책했었다. 원주민과 실향민 사이에도 따뜻했던 인정이 오가고 있었다. 어렵고 힘들었던 만큼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견뎌낸 시간들이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가까운 친정에 다니러 가면 반갑게 맞아주시던 곱단이 아주머니의 가게도 없어졌다. 이북사투리가 오가던 그곳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모두 내 마음속의 잔영이다. 전쟁이 끝나면 돌아갈 줄 알았던 그들은 영원한 외출이 되었다. 맺힌 한을 풀지 못한 채 무심한 세월은 흘러만 간다. 마음은 옛날로 돌아갔다가 발길 따라 걷는다. 아침은 밝아, 해가 수줍게 얼굴을 내민다. 세수를 마친 꽃들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 선과 선을 이었는데 흔적도 없다. 내가 걸었던 그 공간속에는 멈춰버린 시간들만 오롯하다. 발길이 스쳐간 빈 동그라미를 그대로 둔 채 집으로 향한다.

거제중앙신문  skok@geoj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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