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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추락하지 않는 미모지향주의칼럼위원 옥형길

출근길 지하철 전동차 안에서 낯익은 아주머니를 보았다. 누굴까? 한참 기억을 되짚다가 겨우 알아냈다. 한동안 뉴스거리였던 바로 그 선풍기 아주머니였다. 시술에 시술을 거듭하다 마침내 얼굴이 선풍기만 해 졌다는 것이다. 그 분은 수술 전에도 얼굴이 예뻤다. 그리고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하기야 예뻤으니까 더 예뻐지고 싶은 욕심이 생겼을 것이다. 한 쪽의 조금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호기심으로 한 번 시술을 해 본 것이 이쪽저쪽을 계속하게 되었고 그러다가 부작용까지 겹쳐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고 고백하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제발 옛날의 그 얼굴로 돌아가고 싶다고 후회하지만 이미 엉망이 돼버렸다. 그래도 뉴스거리였을 때 보다는 많이 가라앉았지만 기우러진 면상과 주글주글한 피부가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우리 집 부근에 여자 대학이 있다. 아침마다 여대생들이 집 앞 골목길을 지나간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면 입학선물로 성형을 받는다고 한다. 모두가 자매 같다. 거기에다 겨울철에는 대부분 검은색 패딩을 입고 있으니 정말 누가 누군지 모를 지경이다.

요즘 나는 TV를 보다가 아내와 가벼운 실랑이를 벌이곤 한다. 아무리 봐도 아닌데 아내는 저 배우가 김00라고 한다. 아니다, 기다, 한참을 다투다 자세히 보니 어느 한 구석 살짝 옛 모습이 보인다. 그제 서야 “아! 맞네”나는 항복을 하고 만다.

이렇게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인간의 욕망은 지칠 줄 모른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만이 가지는 욕구이기도 하다. 이를 탓할 사람은 없다. 아름답고 밝은 사회를 위해서는 권장할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육신을 훼손해 가면서 까지 이를 쫒을 일인가?

성형이란 본래 건강상 불편한 부분을 치료하기 위한 수단으로 발달된 것이 아니겠는가. 멀쩡한 육신을 깎아 내고 이어 붙이고 부풀리고 떼어내고 뼈든 살이든 마음에 들 때 까지 재시공하는 행위는 지양되어야 할 것이다.

페르시아 만에서는 가장 아름답고 큰 낙타를 선발하는 ‘킹 압둘라지즈 낙타축제’가 해마다 열린다고 한다. 이 행사는 낙타를 상징으로 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조가 전통문화를 홍보하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28일간에 걸쳐 열리는 이 축제에는 낙타미모경연대회, 낙타경주, 낙타머리 아트, 낙타 사진 상 등으로 나누어지는데 전체 상금이 우리 돈 약 660억원이나 된다고 한다. 석유 부자의 나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나 가능한 일이지만 그래도 상금이 이쯤 되니 어찌 수단과 방법을 가리겠는가.

가장 인기 있는 낙타미모경연대회의 상금은 390억원이다.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마침내 출전 낙타에게 보톡스를 맞힌 혐의가 발각되어 12마리가 탈락되었다고 어느 날 신문에 보도 되었다.

낙타의 얼굴과 입술에 보톡스를 맞혀서 거액의 상금을 노린 스캔들이 터진 것이다. 보톡스로 도톰해진 입술에 빨간 립스틱을 진하게 바른 낙타의 미모가 돋보이기는 했지만 낙타가 스스로 예뻐지고 싶어 그랬겠는가. 상금에 눈이 먼 인간들의 욕망이 죄 없이 순박하기만 한 사막의 신사에게 까지 국제 망신을 시킨 것이 아닌가.

이야기를 듣고 보니 짐승도 이렇게 예뻐야 하는데 하물며 사람의 성형시술을 문제 삼아서야 되겠는가. 이를 탓하는 내가 크게 잘못된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성형의 역사는 참으로 오랜 옛날이다. 옛날 중국에서는 계집아이의 발을 어려서부터 피륙으로 감아 작게 하는 전족纏足이라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작은 발이 예뻐 보이도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또 유럽에서는 남자아이의 머리에 투구를 씌워 골상이 반듯하도록 키웠다고도 하는데 모두가 다 일종의 성형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성형이 제자리를 찾은 곳이 있다. 재미있게도 요즘 농업분야에서 성형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이유 없이 권장할 문제가 아닌가. 요즘은 애호박이나 가지, 오이에 규격화된 투명 필림 봉투를 씌워 굽거나 어느 한 부분도 위축되지 않은 균일한 제품을 생산하기도 하고 사과나 배, 수박에도 이런 투명한 필림 상자를 씌워 4각 3각 등의 상품을 생산하여 개성 있는 상품으로 용도에 따라 편리하게 쓰일 수 있게 하니 성형은 어느새 인간과 짐승을 거쳐 식물에 까지 옮아 간 것이다. 필림 봉투를 씌워서 키우면 모양도 바를 뿐 아니라 규격이 균일하고 병해충의 피해도 없으며 신선도 유지에도 도움이 된다니 이는 권장할 농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사람은 타고난 본래의 모습으로 내실을 다듬으며 살아야하지 않겠는가. 인간의 과도한 성형이 계속된다면 삼신할머니도 이제 손을 놓아야 할 판이다. 손을 놓는게 아니라 실직의 위기에 이른 것이다. 관상철학관도 길거리의 타르 점집도 실직위기에 내몰릴지 모른다. 

아름다움은 외형으로만 나타내 보이는 것이 아니다. 아름다운 마음씨, 상냥한 말씨, 따뜻한 봉사정신, 지혜로운 행동, 수준 높은 식견 이런 것을 나타내 보이는 내심의 아름다움이 진정한 아름다움일 것이다. 마음이 고와야지 얼굴만 예뻐서는 사람의 향기가 나지 않는 것이다.

거제중앙신문  skok@geoj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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