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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수필-천년송의 죽음
거제 해금강의 천년송이 죽었다. 정말 천수를 다하여 죽은 것일까?

그렇다면 천년송은 올해로 수령 천년이 되었는가? 해금강은 거제의 상징이고 천년송은 해금강의 상징이었다.
그래서 천년송은 종종 인쇄물의 표제사진으로 등장했다. 그것은 품격(品格)과 인내(忍耐)와 자존(自存)의 상징이었다.

그 고고하게 푸르던 모습이 오늘 아침 신문에는 회색 주검으로 나타나 있었다.

신문사 윤전기의 칼라복사기능이 고장나서 흑백으로 나온 것은 아닐까? 제발 그랬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신문기사는 천년송이 죽었다고 보도하고 있었다.

천년송의 고사원인이 지난해 여름에 불고 간 태풍 ‘루사’의 피해인 것 같다고 하지만 그 자리에서 천년을 버텨온 노송이다. 천년을 두고 마셔온 바닷물이 지금에야 짜서 죽었겠는가.

물론 소금물은 식물체내에서 탈수현상을 일으키고 이로 인하여 원형질 분리가 일어난다. 그래서 식물체를 죽게 한다.

그러나 천년송의 경우는 다르다.
천년을 두고 시달려온 바람이다. 천년을 두고 뒤집어 쓴 바닷물이다. 천년동안 태풍과 해일이 수백번 이었을 것이다.

해마다 몇 차례씩 겪는 태풍이 아닌가, 풍랑이 섬을 넘고 나란히 선 암주(岩柱)가 무너지는 질풍노도의 광란으로 바다가 뒤집어지는 꼴을 어디 한두번 당했겠는가?

그래도 천년송은 죽지 않았다. 해마다 새잎을 피우고 조금씩 가지를 뻗었다.

천년송은 벼랑 위에서 그 고고한 자태로 해수에서 정제된 수분을 흡수하고 멀고먼 해양에서 바람에 실려온 맑은 공기로 숨을 쉬며 송곳끝 같은 바위의 첨단에서 천년의 생명을 부지해 왔다.
그러나 이제 바닷물은 예전의 바닷물이 아니다.

옛처럼 김장거리를 절이고 천일염을 만들고, 두부의 간수로 사용하던 그 바닷물이 아니다.

큰비가 올 때마다 밀려든 인간의 폐기물들로 오염된 더러운 바닷물이다. 기름이 뜨고 각종 화학물질이 섞인 오폐수가 함께 흐르는 썩어가는 물이다. 그래서 천년송은 죽었을 것이다.

천년송의 숨통을 옥 죈 것이 어디 오염된 해수뿐이었겠는가. 지금은 바람에 실려오는 공기도 옛날의 공기가 아니다.

황사요, 매연이요, 아황산가스며 온갖 중금속의 가루에 지구 곳곳에서 밤새워 마시고 토해낸 알콜 성분까지 이렇게 뻑뻑해진 공기는 천년송의 예민한 숨구멍을 틀어막았을 것이다. 그래서 천년송은 죽었을 것이다.

천년송은 가파른 바위 위 하늘아래서 간혹 지나가는 고깃배에서 올려다보는 순진한 어부의 눈빛에 평화를 느끼며 건너 마을 어촌동네 토박이 사람들의 사랑속에 살았을 것이다.

밤이면 무수히 쏟아지는 별빛아래 건너다 보이는 서이말 등대의 깜빡이는 불빛과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들고 아침이면 하늘에 뜬 찬란한 태양의 환희와 비춰주는 햇살의 포근함 속에 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근년에 와서는 그런 사랑의 눈빛과 따뜻한 태양의 축복을 받을 수 없게 되었다. 햇살의 포근함은 오존층이 가로막아 버리고 사람들의 따뜻한 정도 사라져 버렸다.

이제는 유람선이 실어 나르는 하루에도 수천명의 사람들이 올려다보는 눈길에 두려움을 느꼈을 것이다.
저것을 캐어다 화분에 분재하여 내 집 거실에 두면 어떨까 하는 관광객의 탐욕에 찬 눈초리에 진저리를 치며 생명을 부지해 왔을 것이다.

어떻게 중장비를 가지고 와서 바닷속 바위 뿌리부터 통채로 캐어다가 내 집 정원에 둘 수는 없을까 하는 음모를 느끼며 불안해서 죽었을 것이다.
그래서 해금강 천년송은 인간의 탐욕스런 눈독을 먹고 죽었을 것이다.

천년송은 이제 청자빛 생명을 버리고 회식 주검으로 그 자리에 있다. 이제 얼마나 세월이 지나면 저 주검마저도 한마디, 두마디 풍우에 꺾이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 것이다.

그러고 나면 해금강 천년송은 전설이 되어 먼 훗날 아이들은 거기에 어떻게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천년을 살았겠느냐고 믿는 둥, 마는 둥 할 것이다.

태백산 주목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라 하였는데, 해금강의 저 노송 또한 죽어 천년쯤 그 자리에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앨범 속 깊숙이 보관되어 온 해금강 정상에서 찍은 사진 한장을 찾아 내본다. 빛 바랜 32년전(1971년) 사진이다.

<글/옥형길 한국수필가협회회원, 한국문인협회회원, 국제펜클럽한국본부회원, 거경문우회, 송파문학회, 한국산림문학회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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