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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칼럼/우리의 전통문화 예술로 승화되어야할 상여 앞소리

세상의 변화 속도가 매우 빠르다. 얼마 전의 상품이 골동품 취급 되고, 어제의 일이 오랜 역사처럼 느껴 질 때가 많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류 속에서 우리의 전통문화 예술이 하나 둘 종적을 감추고 있다. 그 중 하나가 상여 앞소리다. 장례문화의 급속한 변천으로 마을 앞을 지나던 꽃상여는 영상을 통해서만이 접할 수 있다.

꽃상여 선두에 꽹과리를 치며, 애간장을 녹이는 듯 목소리에 감정을 실어 읊어대던 상여 앞소리꾼, 상두꾼의 노고를 덜어주는 기능과 상주들의 회한의 눈물을 흘리게도 한 장인(匠人)이자 예술인 이었다,

이 상여 앞소리꾼이 우리 거제에도 몇 분이 생존하고 있지만, 꽃상여가 완전히 사라진 지금에는 그들의 소리를 들을 수가 없는 것이 아쉽다. 그 보다 더 아쉬운 것은 남아 있는 극소수의 상여 앞소리꾼이 세월 따라 사라지게 되면, 전수할 사람도 전수 받을 사람도 없어 그 명맥이 영원히 끊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걸어온 길, 음식, 생활양식, 창작예술 등 이 모두가 문화 아닌 것이 없다. 그 중에서도 우리 인류와 함께 발전되어 온 장례의식도 훌륭한 문화다.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서 마지막 떠나는 망자의 혼령을 위로하기 위해 화려한 꽃상여로 장식한 조상들의 지혜야말로 장례문화의 압권이자 마지막 문화였다. 사용한 상여는 꽃 장식만 불에 태우고 상여채란 것을 공동묘지 인근 토굴이나 허름한 집을 지어 보관하였다가 재사용하였으니 그 곳을 일명 상여집이라 하였다.

오래 전에 필자도 상여를 메어 본 경험이 딱 한 번 있었다, 마을마다 상부계란 것이 있어 아버지나 형들이 의무적으로 상여를 메어야 하는 계가 그것이다.

그 날 아버지도, 형들도 참여치 못할 사정이 생겨 어린 나이에 대신 상여를 메게 된 것이다.경사진 고갯길을 돌아 산으로 오를 때에는 몸 전체가 땀범벅이 되었다.

이처럼 힘든 상두꾼의 노고를 덜어주었던 것은 바로 상여 앞소리꾼의 구성진 사설이었다. 애간장을 녹일 듯이 애조 띤 가락에 때로는 신나는 민요처럼 가슴을 파고들어 홀린 듯 걷다보면 어느 새 장지에 도착했던 것이다. 상주들 또한 고된 장례행렬에서 눈물도 말라버린 형식적인 곡소리가 전부였으나 상여 앞소리꾼이 망자의 애환과 회심곡을 섞어 음영하면 형식적 곡소리는 눈물바다로 변했고, 감정이입으로 상두꾼들도 말없이 눈시울을 적셔야만 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지혜롭고 자랑스러운 우리 선조들의 문화유산인가.

이에 필자는 몇 가지를 제안 하고자 한다. 첫째, 사라져가는 상여앞소리꾼을 시도 단위로 몇 분을 인간문화재로 등록시켜, 직업인으로서의 상여앞소리꾼이 아니라 문화예술인으로서의 상여앞소리꾼으로 보전하는 기반을 마련해야겠다.

둘째, 상여앞소리는 지역마다 사설과 음영이 다를 수 있으므로 다양한 상여앞소리를 녹취하여 영구 보전하여야겠다. 셋째, 꽃상여와 나무상여 등 여러 형태의 제작 기술을 영상으로 영구 보전해야겠다.

이와 같은 문화예술분야 행정적 조치가 선행된다면, 사라져 가는 우리의 전통장례문화를 길이길이 보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인으로 승화한 상여앞소리꾼의 활발한 활동으로 후계자를 양성할 수도 있고, 공연도 할 수 있어 이를 영구보전도 가능하리라 확신하는 것이다.

거제중앙신문  skok@geoj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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