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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이창호 회장을 기리며민간개발, 개인치부로 호도해선 안돼
외도해상관광농원을 세계적 명소로 가꾼 이창호 회장이 타계한지 20여일 지났다.

새삼 그분이 돋보이는 것은 국가나 거제시로부터 한푼의 금융지원을 받지 않고 평생동안 모은 사재를 털어 외도 개발에만 몰두, ‘거제도’하면 ‘외도’를 연상케 할 정도로 관광거제발전의 일익을 담당했다는데 자타가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타향인이라는 냉대와 질시, 알력과 편견속에서 평생을 검소, 성실이라는 소탈과 우직함의 저돌성으로 온갖 어려움과 역경을 극복, 외도를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자랑할 수 있는 해상관광식물원으로 가꾸었다.
사면이 바다로 쌓인 천혜의 리아스식 해안절경과 한려해상국립공원, 청정해역이라는 보고를 가진 거제의 관광문화 발전은 시민의 풍요로운 삶과 직결된다

우리는 ‘관광거제 가꾸기’와 ‘21세기 해양관광도시 거제건설’을 앞세우면서도 출향인이 자수성가해 고향발전을 위해 투자하거나 이 회장처럼 외지인이 관광개발을 하려고 하면 행정은 지원을 외면하거나 개인의 치부로 곧장 호도하곤 한다.

그만한 부(富), 그만한 여유(餘裕)라면 평생을 편안하고 한가롭게 즐기며 유유자적(悠悠自適)할 수 있는데도, 섬이 좋고, 산천이 좋아, 아름다운 섬 거제에서 영혼을 묻고 싶어 타협과 흥정을 외면한 채 냉대와 오해, 질시를 받으며 고난의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많다.

그리고 관광개발의 현장들은 고스란히 거제 땅 후손들에게 유산으로 남긴 채 떠난다.

이제 고인이 된 이 회장… 외도사랑의 땀과 눈물, 피와 혼이 서린 그의 인생역경은 오늘을 살아가는 시민들과 공직자들에게‘관광거제발전 방향이 무엇이며 고향사랑’에 대한 많은 교훈을 제시하고 있다.<편집자〉

외도 섬 주인 된 사연

이 회장이 외도와 인연을 맺은 것은 지금부터 35년 전인 1968년… 섬 주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운명의 해였다.

아나운서 출신인 부인과 함께 서울에서 모회사의 대리점을 운영하고 있던 이 회장은 모처럼 친구들과 함께 낚시를 하려고 외도를 찾았을 때 한 노인이 아름드리 동백나무를 자르고 있었다.

깜짝 놀란 이 회장이 사연을 알아본즉 전기나 연탄조차 없이 초가집 6가구가 2만여평의 척박한 농토를 가꾸며 어렵게 살아가면서 땔감이라고는 지천에 널려있는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밖에 없다는 것.

그날 높은 파도로 낚시를 하지 못한 이 회장 일행은 긴긴밤을 초가집 단칸방에서 노인과 지세며 “섬을 떠나고 싶지만 팔리지 않아 못 떠난다”는 딱한 사연을 듣고 서울사람에게 땅을 소개해 주기로 한 후 귀경했으나 여의치 않자 이 회장은 노인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아무런 계획없이 70년대 초 자신의 전 재산 7백만원으로 외도를 사들여 부인 최호숙씨(당시 33세)를 설득, 함께 섬으로 들어오면서 33년간의 고난이 시작됐다.

밀감재배, 돼지사육으로 10년 동안 보낸 허송세월

농토라고는 척박한 2만여평의 밭이 있을 뿐 동백나무와 후박나무가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 아무런 쓸모없는 4만7천여평의 돌섬 외도…세찬 바닷바람만이 두 사람을 반길 뿐 이였다.

교통수단이라고는 어쩌다 오는 낚싯배 뿐, 외도의 초가집 호롱불 밑에서 이 회장 부부는 처음으로 이곳 섬에서 살아갈 길을 의논했다

당시 인근의 일운면에서는 ‘밀감나무 3그루만 있으면 자식을 대학까지 보낼 수 있다’며 밀감나무 식재 붐이 일고 있었다.

이 회장 부부는 온난한 해양성 기후지대인 이곳에 밀감재배가 적합하다고 생각, 일본에서 수입한 밀감나무 수천그루를 심었다. 농사라고는 지어 본적이 없는 이 회장 부부는 손톱에 피멍이 드는 줄도 모르고 퇴비를 만드는 등 온갖 정성을 쏟았지만 무심한 겨울은 하루아침에 밀감나무를 동사시켜 버렸다.

이회장 부부가 처음으로 맛본 좌절이었다.
심기일전, 이회장 부부은 이곳에 돼지를 길러 승부를 걸기로 했다. 4년여의 노력 끝에 돼지가 1백여마리로 늘어났다.

그러나 무동력선을 대절하여 구입해 온 비싼 사료대, 걸핏하면 밀려오는 폭풍과 높은 파도로 적기판로를 놓쳐 바닥으로 하락한 돼지값은 인건비는 고사하고 투자비의 절반도 건지지 못했다.

소설에서나 나오는 낭만의 섬, 백사장과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평화로운 지상낙원을 꿈꾸던 이씨 부부가 겪은 두번째 시련이었다.

훗날 이 회장은 이처럼 엄청난 시련을 극복하고 새로운 삶을 개척하기까지는 ‘평생 지게를 지고 농삿꾼으로 정직하며 꿋꿋하게 살아온 친정 아버지 밑에서 자란 부인 최호숙씨의 정신적인 내조가 큰 힘이 되었다’고 술회하고 있다.

낚시객의 권유로 관광개발 착수

밀감나무재배와 돼지 키우기로 10년간 허송세월을 보낸 80년대 초, 외도에 온 낚시객 4명이 동백나무와 후박나무를 보고 넋을 잃고 감탄했다.

이 회장 부부에게 “어떻게 이처럼 아름답게 나무를 가꿀 수 있었느냐”며 주변 여건 등을 들어 관광지 개발을 권유했다. “바로 그거다, 이곳을 관광지로 개발해야 한다” 그날부터 이 회장
부부는 외도의 자연경관 가꾸기에 혼신의 불을 태웠다.

국내 유명식물원과 미국 일본 등 외국 식물을 구해 오다 태풍에 뱃길이 막혀, 부둣가에서 나무에 물을 주며 부둥켜안고 애태우던 일, 자녀 교육에 문제가 있다며 섬 근무를 기피, 인부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만들어 놓은 선박 접안 시설들이 태풍에 견디지 못해 4번이나 유실되는 등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던 고통들을 견뎌내기 15년…

이 회장 부부는 95년 ‘외도 해상관광농원’을 개장한 후에도 자금압박 등 숱한 우여곡절과 난관을 겪으면서 불굴의 의지로 매년 1백만명의 관광객이 찾아드는 오늘의 외도를 가꿔 ‘거제도’하면‘ 외도’를 연상시킬 정도로 관광거제발전의 한 획을 장식하는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다.

자연과 현대감각이 어우러진 유토피아 연상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 외도, 장승포와 와현, 구조라, 학동, 해금강 등에서 유람선으로 갈 수 있는 외도는 천연림과 동백숲, 1천여종의 아열대 식물이 조화를 이루며 달뜬바위, 공룡바위, 물개바위, 남근바위 등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둘러 쌓여 있다.

명승 2호인 인근 해금강에 못지 않은 비경을 간직, 소금강이라 불리는 외도는 자연이 만든 천연적 경관과 인간이 자연스럽게 현대감각을 고루 섞은 걸작품으로 유토피아(Utopia)를 연상하며 섬을 휘감는 파도는 여인의 허리를 껴안듯 정겹다.

근시안적인 거제시 행정의 관광안목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이 있다
살아생전 처음으로 이 회장은 거제시에 외도의 동편에 조그마한 방파제를 만들어 줄 것을 부탁한 적이 있다. 태풍 등 파도가 너무 거세 관광객의 안전을 우려해서였다.

그러나 거제시는 보기 좋게 거절했다. 특정인의 이익을 위해 방파제를 만들어 줄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해마다 외도를 찾는 1백만명 이상의 외래 관광객으로 인한 부수효과를 외면한 전 근시안적인 거제관광행정의 단면에 이 회장은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전시효과에 급급한 행정과 야합, 수년간 끌어오면서 시민혈세를 축내는 중·대형사업들을 보면서 순수 자기자본으로 개발한 외도해상관광농원은 새로운 관광개발의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거제시는 인근 통영시의 관광분야 투자를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온갖 시비와 냉대, 질시 속에 많은 아픔과 고통을 겪기도 한 이창호 회장은 이제 말없이 천안의 한 공원묘지에 안장돼 있다.

이 회장은 살아생전, 지난날을 회상할 때마다 허허 웃으며“쪽박 찰 일만 했다”며 부인 최호숙(67)여사에게 항상 미안해했다.
“좋아서 인생을 걸고 한일,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며“ 성공도 중요하지만 성실하게 살다보면 성공은 조용히 다가온다” 던 이 회장의 말은 ‘환상의 섬, 21세기 해양관광도시 거제건설’을 말로만 외치는 거제시 행정이 두고두고 음미해 봐야 한다.

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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